1995년 조선총독부 첨탑 철거 사용… 실리콘·구리 등 대체 '21세기 연금술' 주인공 부상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의 치욕스런 상징물인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절단돼 내려왔다. 상단부만 15톤에 달하는 첨탑은 1㎝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강철끈(줄톱)으로 감아 초당 20m씩 고속회전시키는 방법으로 잘라냈다. 이때 쓰인 줄톱에는 일진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국산 인공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공사에 쓰인 공구 역시 국내 업체들이 생산한 제품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과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로 잘라낸 것이다.
◇선진국 '기술장벽' 넘어 세계 3대 제조사로 '우뚝'=1987년 KIST 금속재료연구실과 일진의 기술연구소는 고품질 다이아몬드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장벽이 높아 미국과 영국에서만 생산하던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개발도상국인 한국이 개발했다는 사실에 전 세계 산업계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은 예상치 못한 시련으로 돌아왔다.
일진이 다이아몬드 양산에 들어가자 미국 GE는 일진을 상대로 1989년과 1991년 보스턴 연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민사소송과 공장 가동 중단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최초로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에 성공한 기업인 GE는 당시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던 독점적 기업이었다. 일진은 이에 맞서 '경쟁자 사업 부당 방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5년 가까이 이어졌다.
미국 법원은 1심에서 GE의 손을 들어주며 일진에 대해 "7년간 생산을 중단하고 관련 장비를 파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GE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일진 측은 'GE사의 일방적 주장만을 수용한 판결', '주권 침해적 역외판결'이라며 항소의사를 밝혔다. 재계는 물론 정관계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외무부는 미 법원에 법정조언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존 웰치 GE 회장에 소송 강도를 누그러뜨릴 것을 촉구하는 권고서한을 전달키로 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GE가 1994년 먼저 화해를 제안해 두 회사는 기술 제휴를 맺고 소송을 취하했다. 이로써 일진은 자체 기술력으로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에 당당히 진입, 세계 3대 다이아몬드 제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첨단 산업 이끄는 '21세기 다이아몬드 연금술'=다이아몬드는 99.95∼99.98%의 순수한 탄소 덩어리다. 탄소가 땅속 깊숙한 곳에서 압력과 열을 받아 다이아몬드로 바뀌는 것이다. 흑연도 탄소 덩어리지만 결정 형태의 차이가 있다. 탄소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느냐, 연필심이 되느냐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흑연을 1500도 이상 초고온과 5만 기압 이상의 초고압 상태에 둬서 만든다. 기관차가 연필심을 누르는 정도의 압력으로 누르는 것이다. 최근에는 메탄 등 탄소화합물을 열이나 마이크로파로 분해해 고온 플라스마로 만든 뒤 600∼1500도로 가열한 진공용기 안에서 뿜어 자라게 하는 방식도 개발됐다.
1954년 미국의 GE가 처음으로 만든 인공 다이아몬드는 지름 0.5㎜의 알갱이 형태였다. 지금은 다이아몬드를 원판 형태로 만들거나 다른 금속 표면에 코팅할 수도 있게 됐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거의 같은 지상 최고의 강도, 빠른 음속, 높은 열전달 속도와 광 투과성 등을 앞세워 통신·반도체·무기·우주용 재료 등으로 그 활용 영역을 급속하게 넓히고 있다.
반도체는 용량이 늘어나면서 기존 재료인 실리콘이나 구리로는 소자에서 발생하는 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구리에 비해 열을 방출하는 속도가 5배 정도 빠르기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연구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적외선·엑스선·자외선·가시광선 등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빛을 아주 잘 통과시키기 때문에 우주 탐사선의 창문은 인공 다이아몬드로 만든다.
다이아몬드는 2000∼3000도의 고온 방사광에도 끄떡없이 잘 견디지만 산소를 만나면 타버린다. 하지만 우주에는 산소가 없기 때문에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재료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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