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 칼럼] 베일에 싸인 `면역`의 힘](http://contents.dt.co.kr/images/201510/2015102102102251607001[1].jpg "[의과학 칼럼] 베일에 싸인 `면역`의 힘")
중동 발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가 올 상반기 국내경기를 냉각시켰다. 겨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메르스 마지막 환자가 지난 11일 재검결과 양성으로 판정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균들보다도 그 크최가 훨씬 더 작은 바이러스는 유전정보(RNA 혹은 DNA)가 단백질에 둘러싸여 있을 뿐, 사실상 진정한 생명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은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와 감염을 일으키고 고통스러운 질병을 유발할 수 있을까. 세균은 원시세포 형태로 여러 가지 소기관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세포 안으로 침투해서 인체 세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세포 내 소기관들을 이용해서 자기 유전정보를 복제하고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며 세포 안에 무수히 번식해서 탈출함으로써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을 다시 감염시킬 수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하는 바이러스로 2003년 주로 아시아 중국, 홍콩 등에서 유래했던 사스(SARS) 바이러스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높은 치사율이 보고됐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가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웠던 것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인류가 세균과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세균 즉 박테리아 세포와 인체 세포 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항균제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균들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이 만든 항생제를 파괴시키고 더욱 힘센 세균이 되어 갔다. 게다가 세균보다 훨씬 돌연변이가 쉽고, 전염정도가 빠르며 소독이나 열에 강한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들에 대한 약제 개발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 않다. 게다가 인체 숙주세포 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바이러스를 없애고자 할 때 자기 세포까지도 손상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항바이러스 제제를 만들거나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일이 더욱 어려울 수가 있다.
하지만 숙주세포와 기생체(바이러스나 세포 내 세균) 간의 역학관계를 면밀하게 연구하다 보면 우리 몸 속에 침입한 수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무기와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외부에서 침입한 위험 신호를 감지하여 세포 내 선천면역분자들이 활성화되면 자연항균제 역할을 하는 수많은 항균단백질들이 면역세포에서 분비된다. 이들 항균 단백질들은 상대적으로 양전하를 띠는 아미노산이 많은 단백질들로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의 외막에 결합해 이들을 직접 사멸하거나 숙주의 면역반응을 증강시켜 감염병을 퇴치할 수 있는 선천면역 무기가 된다. 따라서 우리 몸 속의 선천면역 시스템을 증강시켜 면역세포들이 다양한 자연항균단백질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초기에 세균과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또한 내성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로서 필자가 연구하는 결핵의 경우 햇볕을 쬐거나 운동을 하면 세포 내에서 꼭 필요한 자연항균단백질이 활성화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고전치료의 중요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메르스는 환자와 직접 접촉에 의한 비말 감염으로 전파되며 공기전염은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감염질환이 동일한 바이러스와 세균에 노출됐다 할지라도 숙주의 면역반응이 어떻게 활성화되어 대응하느냐에 따라 질병의 결과는 상이하다는 것이다. 결핵의 경우 100명이 감염된다면 5 내지 10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결핵인지도 모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감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에 대하여 숙주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질병의 양상을 좌우하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화가 가속화되어 사람들, 물건, 기술이나 정보 등 국경간 이동이 엄청나게 가속화되고, 우리나라는 이제 초고령화, 서구화, 환경의 변화 등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우리가 경험했던 메르스 사태와 비슷한 제2, 제3의 신종, 재출현 전염병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국민과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새로운 난제로 등장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감염질환 조기 퇴치를 위해 이 복잡한 숙주-병원체 상호작용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조기 진단, 치료를 위해 매우 필수적인 밑거름이 된다. 아직까지 이 비밀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앞으로 이 분야의 기초 의과학 연구 지원이 활성화 된다면 분명히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향후 위험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앞으로 21세기 전염병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은경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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