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 칼럼] 유전자들의 `잘못된 만남`](http://contents.dt.co.kr/images/201510/2015100702102251607002[1].jpg "[의과학 칼럼] 유전자들의 `잘못된 만남`")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상적인 세포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세포 내에서 유전자들은 복잡하고 미묘한 방법으로 조절되고 있다. 태양광선에 포함되는 자외선, 갖가지 방사선, 물리적인 연속자극,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흡연, 스트레스 등과 같은 인체에 유해한 인자들에 의해 장기간 노출되게 되면 세포는 유전자들의 변이를 초래하게 되고 유전자 변이들이 축적되다 보면 세포는 정상적인 컨트롤에서 벗어나 암세포의 운명을 걷게 된다.
유전자에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종류는 다양한데, DNA의 염기서열 중 그 순서가 바뀌는 경우, 유전자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정상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전자들끼리의 새로운 만남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만남은 특정부위의 DNA 가닥이 외부자극에 의해 끊어졌다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이어붙음으로써 발생한다.
우연히 옆에 있던 DNA 가닥을 만나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이 모두 암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만남은 그 이후에 여러 필연적인 조건을 만족해야만 한다. 즉, 암의 발생이 되는 융합유전자는 수없이 많은 우연과 필연의 조건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인생에 의미 있는 만남이 그러하듯이 암유전자들을 살펴보면 조각들을 이어 붙인 듯한 현상도 찾을 수 있다.
직소퍼즐을 뒤집었다가 안맞는 부분은 자르고 덧대며 멋대로 끼워 맞춘 형태로 다양한 유전자조합이 일어날 수 있다. 유전자에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chromothripsis; Cell. 2011 Jan 7;144(1): 27-40)가 일어나면 대부분의 세포는 사멸의 길을 가게 되지만, 우연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유전자가 여러가지 조건이 들어맞는 필연적인 환경이 부가되는 경우 비정상적인 기능을 갖게 되어 살아남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살아남은 세포는 암의 씨앗이 될 수 있어 이러한 퓨전유전자가 일부 특정 암의 원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폐암에서 나타나는 echinoderm microtubule -associated protein-like 4 (EML4)-anaplastic lymphoma kinase (ALK)이다. 정상세포에서 세포의 증식을 조절하는 유전자 ALK와 세포의 모양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유전자EML4가 융합한 EML4-ALK는 세포의 비정상적 증식을 초래해 특정폐암의 강력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폐암환자의 4~5%가 이 퓨전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다행히도 현재 이러한 퓨전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가 개발되어있다. 표적치료제는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발암과정의 특정표적인자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치료제를 말하는데, 이는 처방에 앞서 '암세포가 이러한 표적을 가지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ALK 표적 치료제인 잴코리(크리조티닙)는 투약이 가능한 폐암 환자군에서 현저한 종양 억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최근 건강보험급여 적용을 받게 됨으로써 ALK 퓨전유전자를 갖는 환자군을 정확하게 진단해 내는 일은 더욱 중요하게 됐다. 이러한 퓨전 유전자는 폐암 이외에 다른 종양에서도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새로운 표적치료제의 타깃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 연구팀은 ALK 퓨전유전자가 있는 폐암세포를 유전체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핵심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암발생의 원인이 되는 퓨전유전자를 발굴하고 효율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정밀한 진단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최윤라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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