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통 두드려 만든 '시발'서 시작… 수소차·커넥티드카 등 새로운 도전 직면
광복 이후 최초의 국산차는 '시발'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자동차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8월 자동차 정비업자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가 만든 시발자동차는 미군 트럭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을 재활용하고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차체를 만든 군용 지프 형태의 조립 승용차였다. 주요 부품은 미국 차량에서 가져왔지만, 실린더 헤드 등 엔진 부품을 한국 기술자가 공작기계로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국산화율이 50% 정도 됐다. 시발은 1955년 10월에 열린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상품과 대통령상을 차지하면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고, 택시업계에서 이 차를 사용하면서 인기를 끌어 1963년까지 3000여대가 생산됐다.
1960년대는 자동차 업체의 전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자동차산업도 육성 대상 산업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1962년에 '자동차공업보호법'을 제정하고 '자동차공업육성5개년계획'을 수립했으며, 이어 1963년에는 '자동차조립공장일원화 방안', 1964년에는 '자동차산업 육성계획' 등을 발표했다. 정부 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수입대체 전략이었다. 선진국 자동차 기업과의 자본·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완성자동차 수입은 전면 금지하고 외국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신진자동차공업(현 한국GM), 기아산업(현 기아차), 하동환자동차공업(현 쌍용차), 아시아자동차공업(기아차와 합병), 현대차 등이 정부 주도 아래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1969년 경인고속도로,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자동차 산업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시발자동차 생산 시작 후 20년이 지난 1975년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출시한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독자모델을 생산한 것. 포니는 1976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며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갔다. 시판 첫해 1만726대가 팔려 국내 승용차 시장 1위에 올라섰고, 같은 해 에콰도르에 6대를 실어 보낸 것을 시작으로 10년 후인 1986년 1월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1000대가 첫 수출돼 국산 자동차의 수출 시대를 열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고유모델 개발을 계기로 상승세를 타며 기대를 모았던 한국 자동차산업은 1978년 12월부터 79년 3월까지 이란이 석유수출을 중단함으로써 발생한 '제2차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부진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단행, 승용차 생산은 현대와 대우가, 중소형 트럭은 기아가 독점 생산하게 산업을 인위적으로 구조 조정했다. 자동차 산업을 후퇴시킨 합리화 조치는 1986년 해제됐고, 이와 동시에 기아는 '프라이드', 현대는 '엑셀'과 '프레스토', 대우는 '르망' 등을 앞세워 전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국산차의 본격적인 대량 수출이 이뤄지고 기술 자립화가 진척되면서 한국은 1996년 28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0위권의 자동차 생산국가로 떠올랐다. 현대자동차는 7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1991년 국내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인 1.5ℓ급 '알파엔진'을 내놔 본격적인 기술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내수시장이 무너지고 대우와 기아차가 잇따라 도산하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휘말려 든다. 구조조정은 19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이후 대우차는 미국 GM으로 넘어갔고 삼성자동차와 쌍용자동차도 해외에 매각됐다.
구조조정 여파를 넘은 기업들은 2000년대 품질개선과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양적 성장을 이어가며 세계 상위권 업체들을 맹추격했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안정된 품질 위에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치 같은 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이런 성장 발판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소형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시장을 주도하는 힘이 됐다. 2000년 311만대였던 자동차 생산실적은 2011년 466만대로 늘어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했다. 수출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해 같은 해 전체 생산량의 67.7%에 달하는 315만 대를 해외로 수출했으며, 수출증가율은 88.1%에 달했다.
이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추격자'에서 새로운 '선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커넥티드카, 수소자동차 등 기술 혁신 경쟁에서 앞서가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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