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독 아우토반 깊은 인상
현대건설, 태국고속도 건설경험 바탕
1968년 428㎞ 경부고속도로 '대역사'
현대건설, 태국고속도 건설경험 바탕
1968년 428㎞ 경부고속도로 '대역사'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8) 경부고속도로 건설
1964년 12월 8일, 칼 하인리히 뤼뷔케 서독 대통령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본과 퀼른을 잇는 아우토반(고속도로) 20㎞ 구간을 시속 160㎞의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 도로는 1932년 완공된 독일 최초의 고속도로로, 독일 경제 부흥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박 대통령은 아우토반을 달리던 중 두 차례나 차를 세우고 노면, 중앙분리대, 교차시설 등을 주의 깊게 살폈다. 또 뤼뷔케 대통령의 의전실장에게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듬해 정주영 회장이 이끄는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최초로 태국이 발주한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당시 국내에는 번번한 도로조차 없는데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했으니 국가적인 경사였다.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정부는 독일의 아우토반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박 대통령의 주도로 고속도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독일 아우토반에서 받은 영감, 고속도로 건설로 이어지다=정부 계획에 따라 먼저 1967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고속도로가 착공됐고 1968년에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의 경부고속도로 대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고속도로 건설에 들일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이 1㎞당 고속도로 공사비로 우리나라 돈으로 8억원을 썼는데 이대로라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3500억원이나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는 1967년도 국가 총예산 1643억원의 두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회고록에서 "밤늦게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뵈면 각하는 손수 인터체인지(IC)의 선형을 그리시며 '1개당 1억원이 넘는 IC 건설 비용을 3000만∼4000만원에 할 수 없겠냐'며 예산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박 대통령의 뜻(공사비 최소화)을 충분히 이해하고 태국에서 고속도로를 직접 시공한 경험이 있는 기술사원을 총동원해 서울∼부산을 여러 번 왕복 답사, 검토한 후에 4차선 고속도로에 대한 현실성 있는 개략 예산으로 280억원을 내놨다. 추후 경부고속도로 공사비는 건설부의 안을 반영해 1㎞당 1억원, 430억원으로 조정됐다.
◇태국서 먼저 쌓은 고속도로 건설 경험을 국내로=현대건설은 태국에서 쌓은 고속도로 건설 노하우를 총동원하고, 아스팔트와 시멘트 국내 양산체제를 갖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판단했다. 경인고속도로 공사로 자신감을 얻은 현대건설은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첫 사업지인 서울∼수원 구간의 첫 삽을 떴다.
공사에는 현대건설을 비롯, 대림산업, 동아건설, 삼부토건, 극동건설, 아주토건, 삼환기업 등 16개 국내 업체와 3개 육군 공병대대가 참여했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토목사업이었기 때문에 굴지의 국내 건설사는 다 참여한 것. 미국의 디루케터인터내셔널(De Leuw Cather International)이라는 고속도로 건설 전문업체가 기술자문을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총공사비 430억원은 1968년 정부 일반재정 예산(2657억원)의 16%에 달하는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였다. 900만명의 인력과 165만대의 중장비를 포함해 시멘트 680만포, 아스팔트 47만 드럼, 철근 5만톤이 투입됐다.
현대건설은 전체 7개 공구 가운데 수원, 천안, 대전 등 3개 공구(서울∼오산, 오산∼몽단이, 증약∼묘금리 128㎞)에 참여했다. 경부고속도로는 총연장 428㎞ 4차선, 일반교 281개소, 장대교 29개소, 터널 6개소로 건설됐다.
◇1968년부터 단계적 개통=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인 수원공구는 서울∼수원간, 수원∼오산간으로 구분해 동시에 진행됐다. 서울∼수원 도로는 1968년 11월 초에 1차 준공검사를 받고 12월 21일에 개통식을 열었다. 수원∼오산간은 12월 30일 개통했다. 현대건설과 육군 건설공병단의 협업으로 고속도로가 공기 내 성공적으로 개통할 수 있었다. 당시 군에서 파견된 감독원들의 근무태도가 철저해 고속도로의 품질을 높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원공구의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정주영 회장은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군 출신의 젊은 감독들이 너무 원리원칙만 고집하는 까닭에 저희가 일을 못해 나갈 지경"이라고 하소연하자, 박 대통령은 "까다로운 감독과 까다로운 건설회사가 잘 협력해서 걸작품을 만들어 보시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가장 악명 높은 난공사는 당재터널…1115m 뚫는데 290일 걸려=대전공구의 당재터널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우신리와 충북 옥천군 청성면 묘금리를 연결하는 터널로 경부고속도로 공사 구간 중 가장 악명 높은 난공사였다. 당재터널은 상·하행선으로 분리해 건설한 총연장 1120m(상행 590m, 하행 530m)의 곡선형 터널로, 공사비만도 무려 5억원이 투입돼 경부고속도로 1㎞당 공사비 1억원에 5배나 사용됐다. 이 구간에 있는 지방도는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길이어서 지프차나 작은 트럭 한 대 정도가 겨우 다닐 수 있어 공사에 사용할 대형장비를 투입할 수 없었다. 장마철에는 냇물이 범람해 도로가 물에 잠겨 공사 관계자들의 발을 묶기도 했다. 소달구지로 측량기구를 싣고 물길을 건너기도 했다.
당재터널을 뚫다가 낙반사고가 10여 차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근로자 9명에서 11명이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터널 공사는 1회 폭약 발파에 0.75m 굴진으로 계산해 하루 2∼3교대 작업으로 약 2m를 파들어갔다. 그러나 암질이 단단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잡돌이 계속 쏟아져 동바리(가설재)를 촘촘히 세워도 흘러내리는 잡돌을 잡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한 쪽에는 굴을 파고 한쪽에서는 낙반사고를 막기 위해 아치형 콘크리트를 세우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낙반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을 치우는데만 보통 10여 일이 걸렸다.
1969년 9월 11일 착공한 당재터널은 1970년 6월 28일 준공예정일까지 290일 동안 상하행 1115m를 뚫었다. 근로자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굴을 팠지만 하루에 4m도 파지 못한 것이다. 백남성 현대건설 당시 포장담당 기사는 "2년 5개월 동안 집에는 한 달에 잘하면 한번 가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공사장에서 한창 일을 하다 보면 날이 더워서 옷을 갈아입으면 여름이고 또 일을 계속하다 보면 눈이 내렸다. 날짜가 가고 계절의 변천을 실감할 수 없는 곳이 당재터널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정주영 회장, 준공 맞추기 위해 최신 시멘트 도입 결정=경부고속도로의 모든 구간이 착착 준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당재터널은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었다. 터널을 모두 뚫어도 토공 및 포장공사도 진행해야 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또 6월 장마까지 겹쳐 당재터널과 도내터널 사이의 6㎞ 구간이 비 때문에 공사 중단 위기에 놓이는 등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때 정주영 회장은 당재터널의 측벽에 보통 시멘트보다 강도가 2∼3배 높고 빨리 굳는 비싼 조강 시멘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정 회장은 단양에 있는 시멘트공장으로 직접 무전을 날려 책임자를 찾은 후 "조강 시멘트를 생산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조강시멘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라인에서 일반 시멘트를 빼고 청소를 하는 등 준비기간만 2주가 걸려야 했다. 현대건설로서는 큰 손해를 입으면서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위해 조강시멘트 생산과 운송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양봉응 현대건설 전무는 "보통 시멘트는 타설한 후 1주일이 지나야 소정 정도가 나오는데 조강시멘트는 48시간만 양생하면 소요 강도의 80%가 나온다.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국가의 대사업을 위해 전력투구했다. 경부고속도로 준공 이후 몇몇 업체가 은행관리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고속도로만 끝내놓고 망하면 그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1970년 6월 역사적 완성=정 회장의 결단으로 1970년 6월 27일 밤 11시 경부고속도로의 마지막 구간인 당재터널이 뚫리고 도내터널까지 도로포장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마침내 서울∼부산 고속도로가 모두 개통된 것이다. 당시 이한림 건설교통부 장관은 "당재터널 남쪽 300m 지점에서 포장을 완성함으로써 역사적인 경부고속도로의 완성을 보게 됐다. 나는 그때 그 지점에서 관계 간부들과 만세삼창을 외치고 거대한 창조물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리고 7월 7일을 택해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을 거행했다"고 남겼다.
경부고속도로에 투입된 총사업비는 공사비, 보상비, 조사설계비, 외국인용역 등을 합해 429억원에 달했다. 그중 공사비만 379억3300만원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의 공사였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이 87억9600만원을 수주했는데 이는 1968년부터 1970년대까지 전체 기성액 359억3500만원의 24.5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로로 현대건설은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공사에 참여한 기업, 근로자, 군인 등이 표창을 받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가장 큰 성과는 우리 기술진이 정부 관계부서의 모든 정책을 선도해 나가며 전반적인 공사 흐름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라며 "순수한 한국 기술진과 자본에 의해 이뤄진 성과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대형 프로젝트 공사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말했다.
허우영기자 y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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