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 1.5 초음속비행기 'T-50' 개발… 수출 · 자주 국방 '국익'
항생제 신약 '팩티브' 건강 주권 확보… 제약산업 저변 확대
인간형로봇 '휴보' 세계재난대응대회 우승…구조용 활용 탄력
항생제 신약 '팩티브' 건강 주권 확보… 제약산업 저변 확대
인간형로봇 '휴보' 세계재난대응대회 우승…구조용 활용 탄력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6) 국민 안전·건강 집중한 2000년대 이후
2002년 8월 20일 오후 3시 30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비행장.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시제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르더니, 이내 파란 하늘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1992년 10월 시작된 탐색 개발부터 13년, 본격적인 개발에만 8년이 걸린 2조원대 초대형 국책사업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 첫 고등훈련기의 초도비행이었다. 개발 사업을 이끌어온 항공사업단장 이진학 공군 소장은 수십 차례 점검을 통해 안전을 확신했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총 2500시간의 비행기록을 갖고 있던 베테랑 비행사 조광제 중령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각별한 비행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T-50이 엔진 회전속도와 진동, 온도, 가속도, 압력 등 수많은 신호를 지상으로 보내오자 지상통제소 기술진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T-50은 고도 1만5000피트(4572m)까지 올라가 40여 분 동안 창공을 누볐다. 오후 5시 4분, 랜딩기어를 편 T-50이 날렵하게 사천비행장에 착륙했다. 조 중령이 T-50에서 내리는 순간, 이를 지켜본 공군과 KAI 관계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초도비행은 대성공이었다. 마하 1.5의 초음속 비행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고유모델 초음속 항공기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T-50은 세계 최초로 '동시공학' 기법을 완벽하게 적용, 100%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실물모형 제작과정 없이 컴퓨터 목업을 적용해 개발기간 단축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또 훈련기로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비행제어기술 등 각종 첨단 디지털 항공전자 시스템을 장착해 기존 훈련기와 비교해 비행시간은 26%, 비용은 30%를 절감하면서 기술숙련도는 40%를 높이는 성능 향상을 이뤘다.
T-50은 국내 공군에 50여 대가 배치됐고, 2011년 인도네시아에 16대 수출 계약 체결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6번째로 초음속기를 수출한 나라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13년 이라크와 24대를 계약하고 T-50을 바탕으로 개발한 경공격기 'FA-50'이 필리핀에 12대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총 25억6000만달러 규모의 수출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높은 성능을 입증했다.
T-50 사업을 통해 시작 당시 선진국 대비 30년 이상에 달했던 기술격차는 5년 내외로 줄어들었고, 생산 유발효과 25조90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7조8000억원, 산업 파급효과 17조7000억원 등 총 51조40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초음속 항공기를 우리 손으로 개발하고 앞으로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자주 국방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중대한 국익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글로벌 신약 '팩티브' 개발=2000년대 과학기술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삶의 질과 공공성 관점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핵심적인 국가경쟁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생명공학기술(BT) 분야는 질병과 식량난,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등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고, 특히 건강하고 오래 사는 '건강수명'을 늘려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크게 변화시킬 기술 분야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BT 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로 국산 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항생제 신약 '팩티브' 개발이 꼽힌다. 신약 개발은 막대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 우리 손으로 만든 약으로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건강 주권' 확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다국적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팩티브 개발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심어줬다.
팩티브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 신약 승인을 받기까지 과정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1991년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이 신물질 개발에 착수한 2년 뒤 어렵게 후보 물질을 찾아냈지만, 연구팀장이 지병으로 사망하고 독성 문제로 동물실험이 실패하면서 연구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개인 시간까지 할애하며 남몰래 연구를 이어간 끝에 독성문제를 해결한 '옥심' 구조의 획기적인 신약 물질을 만드는 데 성공, 연구를 재개해 팩티브 탄생의 초석을 다졌다.
1999년 12월, LG생명과학은 미 FDA에 신약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다음 해 돌아온 결과는 '불합격' 통보였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파트너사였던 GSK로부터 공동개발 제휴를 철회한다는 통지가 날아왔다. 수백억원 투자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사내에서는 '신약개발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시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이었던 양흥준 전 LG생명과학 사장은 이러한 위기야말로 신약 개발 기업이 겪고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정이며,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사내·외에 역설해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선다. 팩티브 사업팀은 미국과 유럽 50여 개 기업과 접촉한 끝에 '진소프트'와 제휴계약을 체결했고, 개발팀은 새로운 파트너사와 자료 보완과 조정 작업에 나섰다. 팩티브팀은 시차로 인해 낮과 밤이 바뀐 강행군을 이어간 끝에, A4 용지 10만여 장 분량의 자료를 담아 2002년 10월 4일 FDA에 신약승인을 다시 신청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2003년 4월 5일, 휴일 새벽에 전해진 이메일에는 '팩티브 미 FDA 신약승인'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12년 간 100여 명에 이르는 각 분야 연구원들이 겪어 왔던 수많은 난관과 좌절이 성공의 기쁨과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팩티브로 시작된 글로벌 신약의 꿈은 현재 '제미글로'(LG생명과학), '카나브'(보령제약), '놀텍'(일양약품), '시벡스트로'(동아에스티) 등 우수한 국산 신약 개발로 이어져 한국 제약산업의 저변을 전 세계로 넓혀나가고 있다.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 개발=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KAIST에는 진기한 로봇이 하나 있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걸으며 장애물을 피하고, 가위바위보와 가벼운 춤도 출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란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을 가리킨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로봇을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은 국방·우주 분야에서, 일본은 제조용 로봇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유럽 선진국은 복지용 로봇의 연구와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KAIST 오준호 교수팀이 2004년 개발한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통해 선진국 대비 85% 수준의 로봇 이족보행 기술을 개발했고, 로봇 제어를 위한 센서와 제어기 기술의 90% 이상을 국산화했다.
휴보의 6번째 개량 모델 'DRC 휴보2'는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열린 세계 재난대응 로봇 경진대회에서 미국과 일본, 독일 등 로봇 강국을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 DARPA(방위고등연구기구)가 주관한 이 행사는 위험하고 긴박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로봇이 재해구조 임무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완수하느냐를 겨루는 대회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지금까지 실용성보다는 로봇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선행연구 목적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재난현장이나 구조용으로 활용 가치가 크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다. 사람을 대신해 척박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현장에 투입할 로봇이 없어 도쿄전력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간 일이 계기가 돼 세계적으로 극한 환경에서 인간을 대신해 작업을 할 수 있는 고성능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1994년 KIST의 연구로 시작됐다. KIST 연구진은 1999년 '센토'를 시작으로 위험작업 로봇 '롭헤즈', 안내 로봇 '지니'와 '시로스' 등을 선보였다. KIST의 선행 연구는 다른 연구소와 대학으로 확대됐고, 2000년대에 들어 여러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대형 과제로 채택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연구원들이 세계적인 전문가로 성장했고, 한국은 인간형 로봇 분야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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