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 제작 49년만에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 '우뚝'
조선소 건립·선박 건조 동시에…세계 유일 '무한도전'
금성·삼성 TV생산 시작…TV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조선소 건립·선박 건조 동시에…세계 유일 '무한도전'
금성·삼성 TV생산 시작…TV시장 점유율 '세계 1위'
■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3)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1970년대의 '무한도전'
1976년 2월 29일, 아직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전 직원이 운동장에 줄을 지어 섰다. 언 땅에 선 직원들은 마치 연병장에 도열한 군인들처럼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단상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오원철 청와대 제2경제수석, 이낙선 상공부 장관 등 귀빈들이 자리했다.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은 연단에 오르긴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은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오는 출고기념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 국내 자동차 산업은 다국적 기업과 제휴해 해외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이었고,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포니 정'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1972년 고유모델을 만들기로 결심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의 고유모델 구상은 시작부터 벽에 부닥쳤다. 고유모델 얘기를 꺼내자마자 중역이나 간부들을 포함해 회사 전체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고유모델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코티나를 조립하고 있지만 그 조립 도면 카피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력으로 어떻게 고유모델을 설계해서 만들겠다고 그러십니까" 당시 기술책임자의 솔직한 말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고유모델 개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좁은 한국 시장만 보고 자동차를 생산해 봐야 승산이 없고,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독자 모델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자동차를 독자적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해외 제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임직원과 엔지니어들은 배수진을 치고 앞만 보며 전 세계에 나가 기술을 배우고 노하우를 익혀 고유모델 개발에 나섰다. 개발 3년 만인 1976년, 대한민국 최초, 세계 16번째, 아시아 2번째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의 양산이 시작됐다. 시판 첫해 국내에서 1만726대가 팔려 시장점유율 43.5%를 차지한 데 이어, 같은 해 남미 에콰도르에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첫해 1019대, 77년 7421대, 78년 1만8317대를 해외에 내다 팔았다. 1986년에는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진출해 첫해 17만대를 판매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완성차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불과 20여 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을 육성해 독자 모델을 개발·생산하고 수출까지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진정한 시작을 알린 포니 생산을 시작한 지 49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며, 연간 300만대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맨땅에서 시작해 26만t 유조선을 바다에 띄운 '무한도전' = '조국 근대화'를 내건 경제개발 정책과 함께 자동차와 조선 등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산업기술 개발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무한도전'이었다. 도전은 기적에 가까운 성과로 이어지며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4년 6월 28일,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만든 국내 최초의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 1·2호의 명명식이 시작됐다. 배를 발주한 해운업자 요르거스 리바노스는 정주영 회장에게 "지금까지 내가 본 배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배"라고 말했다. 그리스 해운계의 거물이자 배를 감정하는 데 까다롭기로 소문난 리바노스의 이런 평가는 이미 한국의 건조기술이 세계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두 척에는 '애틀랜틱 배런(대서양의 남작)'과 '애틀랜틱 배너리스(대서양의 남작부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날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1972년 조선소 건설을 위해 차관을 구하러 유럽 각국을 오가던 정주영 회장에게 영국 수출신용보증국(ECGD)은 차관 승인을 받기 위해 먼저 배를 수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26만t급 유조선 도면 한 장을 들고 아직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만들지도 않은 배를 팔기 위한 영업에 나섰다.
리바노스와 2척의 유조선 건조 계약을 체결한 현대중공업은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전무후무한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선박 건조경험은 대한조선공사에서 만든 1만7000t급이 최대였다. 덴마크에서 영입한 조선소 사장과 조선전문 기술자, 영국과 일본 등에서 기술을 연수한 사원들을 중심으로 수천명이 선박 건조에 불철주야 매달렸지만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울산조선소는 도크가 완공되기 전에 선박 건조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에 공장과 야드에서 선체 블록을 제작했다. 문제는 제작이 끝난 50t이 넘는 블록을 깊이 12m의 도크 바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블록을 옮길 '골리앗 크레인'이 설치되려면 3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정 회장은 블록을 트레일러에 실은 후 뒤에서 불도저를 당겨 속도를 줄여가면서 도크의 경사로를 내려가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적중해 블록을 도크 바닥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건조기간 동안 피땀 흘려가며 하나하나 개발한 기술들은 오늘날 국내 조선산업을 전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됐다.
◇ 열악한 환경 뛰어넘은 '국산 TV 신화' =지금은 국내 기업끼리 세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할 정도로 한국이 전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는 1961년 영상방송이 시작됐지만 이를 수신할 수상기는 미국이나 일본 TV를 수입해야만 했다. 이에 국산 TV 개발을 위해 정부는 당시 가장 큰 전자회사였던 금성사(현 LG전자)에 TV 생산을 의뢰했다.
금성은 1963년부터 TV 생산에 매달렸지만, 개발과 제조 등 모든 부문에서 기술력이 부족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금성은 기술연수팀을 일본 히타치로 파견했고, 이들이 배워온 기술로 1966년 최초의 국산 흑백TV 'VD-161'을 출시했다. 비록 많은 부분 히타치 TV를 모방했지만, 부품 국산화율이 50%를 넘었다. 출시 당시 TV 가격은 6만8000원으로 쌀 약 27가마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지만, KBS에서 공개추첨을 해 당첨된 사람에게만 팔았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은 1975년 8월 세계 3번째로 개발한 예열이 필요없는 절전형 TV인 '이코노 TV'를 출시해 단시일 내에 국내 TV 시장을 석권했고, 1978년에는 세계 생산량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1976년 삼성은 컬러TV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사치를 조장하고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컬러TV 방송을 금지했기 때문에 삼성의 컬러TV는 전량 수출됐다. 금성도 1975년 전량 수출 조건으로 생산 허가를 얻어 1977년 컬러TV 생산을 시작했다.
이 두 라이벌 업체의 혁신 경쟁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선진 업체보다 흑백TV 시대에 60여 년, 컬러TV 시대에 30여 년 뒤졌지만 현재 전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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