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 칼럼] 동충하초와 신약개발 이야기](http://contents.dt.co.kr/images/201507/2015071502102251607001[1].jpg "[의과학 칼럼] 동충하초와 신약개발 이야기")
수 천년에 걸쳐서 사람에게 임상시험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는 한약 또는 생약으로부터 신약이 만들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생약에서 얻은 물질을 인간들이 구조를 바꾸고, 다시 인체내에서 구조가 변환되어 약효성분이 만들어지는 예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동충하초에서 활성성분을 찾기 시작해서, 최근에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임상에 적용되는 길레니아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동충하초는 인삼, 녹용과 함께 3대 불로영생의 약으로 꼽히는데, 그 모양이 겨울에는 벌레모양이고 여름에는 풀처럼 생겼다는 것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가장 대표적인 동충하초는 박쥐나방과의 유충 시체에서 자라는 맥각균과의 곰팡이 균사체이다. 18세기 청나라의 한방서적에서부터 '동충하초'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진시황때부터 쓰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동충하초의 대표적인 효능은 인삼과 같이 영양강장, 피로회복의 용도로 허약체질에 이용됐고, 기침, 가래, 천식등 폐 질환에 적용되어 왔다. 동충하초에서 처음으로 분리된 활성성분으로는 항암활성을 가지는 '코르디세핀'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 성분은 아데노신 구조와 유사하여 DNA합성을 저해하여 항암활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적응증으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노바르티스의 경구용 길레니아(성분명 핀골리모드)의 개발과정은 동충하초에서 시작된다.
동충하초균에서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면역억제제를 분리한 경험으로 과학자들은 새로운 면역조절제를 찾으려 노력했고, 면역억제성분으로 ISP-1이라는 물질이 분리되었다. 이 물질은 스핑고지질이라는 생체지질성분의 합성을 억제하여 면역세포를 사멸시킨다. 하지만 독성이 커서 약으로 개발할 수는 없었다. 이 물질의 구조를 바꾸며 독성이 없는 더 좋은 약물을 찾던 일본 연구그룹에 의해 FTY-720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졌다. 이 FTY-720는 혈액중에 있는 백혈구의 숫자를 줄여주는 활성이 있었다. 즉 혈액중에 있는 면역세포의 숫자를 조절하는 새로운 개념의 면역조절제인 것이다.
나중에 FTY-720의 면역조절 활성은 이 물질이 인체내에서 'FTY-720-인산'으로 변환되어 나타나며, 변환된 물질이 인체에서 호르몬처럼 작용하는 '스핑고신 1-인산'이라는 지질성 신호전달물질의 수용체 단백질에 작용하여 효과를 나타냄이 밝혀졌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약효성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정리해 보면, 동충하초균에서 얻으려던 면역조절제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새로운 구조의 합성물질인 FTY-720이 만들어지게 됐고, 이 합성된 물질이 인체 내에서 인산화라는 생물학적 변환을 통해 약효성분인 'FTY-720-인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길레니아는 자연에서 얻은 물질에서 시작했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새로운 구조를 만들게 되었고, 인간들이 의도하지 않은 인체내 변환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진짜 약효를 갖는 활성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점은 신약을 개발하려는 인간의 노력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 즉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놀라운 발견을 했을 때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히 곰팡이 주위에는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하는 것에서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을 예로 많이 거론한다. 길레니아의 경우도 우연히 활성물질의 전구체를 만든 것으로 생각하면 또 다른 세렌디피티가 될 것이다(길레니아는 FTY-720의 상품명이다).
임동순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MRC 분자염증 노화제어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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