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삼성생명·전자 지배 형태 전환
그룹 경영승계·경영권 강화 '두토끼' 잡아
전자시장 위기감 반영 발빠른 사업 재편
그룹 경영승계·경영권 강화 '두토끼' 잡아
전자시장 위기감 반영 발빠른 사업 재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경영 승계 '뼈대' 완성
합병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이재용 체제의 밑그림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재편보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권을 집중해 애플, 구글 등 주요 외국 기업들과의 시장 경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그룹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결의하면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의 19.4%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지고 있다. 합병 이후 이 부회장 일가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과거 순환출자 꼭짓점에 있던 제일모직의 42.2%보다는 낮은 30.4%가 되지만 경영권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번 인수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했다. 최근 삼성생명의 지분 4.68%와 2.18%를 보유한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됐고,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지분 19.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여기에 이 부회장이 지난해 말 개인적으로 취득한 지분 0.06%까지 합치면 총 26.22%의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한 이 부회장은 이로써 삼성전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지분 17.65% 중 부친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보유한 3.38%와 어머니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의 0.74%를 뺀 나머지 지분의 실질적 지배권을 가지게 됐다.
이번 인수로 이 부회장 측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득은 삼성SDS에 대한 경영권 부담을 덜게 됐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이 삼성SDS의 지분 17.08%를 보유하고 있어, 이 부회장 등 삼남매가 가진 지분 19.05% 중 일부를 처분하더라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삼성SDS 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비율은 58.72%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삼성SDS 지분을 삼성전자 자사주 지분과 맞교환하거나 하는 식의 주식 교환 시나리오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이 부회장 등은 삼성SDS의 지분을 처분하지 않아도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병 발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경영자로 올라선 이후 이뤄진 대대적인 사업구조 조정 및 승계 절차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한차례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재합병 문제가 남아있지만,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 주요 재계 인사들의 분석이다. 단 마무리 단계에서 제일모직 패션부문과 삼성물산 건설부문 등 일부 사업부문의 재조정 또는 분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최근 1년간의 숨 가뿐 사업 재편으로 지주회사 전환 없이도 경영승계 완성과 경영권 강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기반을 다졌다. 무리해서 지주회사로 전환하기보단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그룹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룹 내 위기감이 이 속에 담겨있다.
실제 가전과 스마트폰 등 주요 전자 사업에서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커진 삼성은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미국이 강력한 구조조정과 셰일가스 동력 등을 바탕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고, 세계 주요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삼성의 위상은 구글과 애플 등 주요 경쟁사들의 협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엔저를 앞세운 일본의 추격과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등 주요 전자 시장에서 중국의 급부상 역시 삼성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공백으로 삼성가가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가 시급한 문제가 됐지만, 여기에 시간을 끌다 보면 경영권을 찾는 대신 시장을 잃을 것"이라며 "삼성의 발 빠른 사업 재편과 경영 승계 움직임은 경영권뿐 아니라 시장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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