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표준-할인제한으로 국산맥주 역차별… 수입산은 세금 적게 내고 이윤 많이 챙겨가
# 최근 서울 영등포 한 대형마트의 주말 풍경. 고객들로 북적이는 매장 내에서도 주류코너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에선 최근 인기를 끄는 독일산 맥주 500㎖ 캔 4개를 5000원에 팔고 있었다. 같은 매대지만 사람들 눈이 별로 가지 않는 아래쪽에는 최근 출시돼 반응이 좋은 국산 맥주 355㎖ 캔 6개 묶음이 8940원에, 바로 옆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국산 맥주 355㎖ 7670원에 스낵을 붙여 내놓았다. 세 제품의 100㎖당 가격은 독일 맥주가 320원으로 가장 저렴하고, 국산 맥주는 각각 420원, 360원이었다. 소비자들의 눈과 손은 국산보다 수입 맥주에 쏠렸다.
최근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가 일부 가격 역전현상까지 보이며 수입 맥주 판매가 크게 늘어나 국내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 이면에는 수입 맥주에 관대하고 국산 맥주는 역차별하는 국내 제도가 한몫을 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맥주 시장 수입산이 빠르게 성장=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맥주 수입량은 5만3618톤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9.2% 늘었다. 최근 3년간 맥주 수입금액은 약 68.2% 성장했지만 국내 맥주 시장 성장률은 7.15%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특히 대형마트에서 수입 맥주 판매가 크게 늘면서 매출 비중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홈플러스에서 수입 맥주와 국산 비중이 2009년 각각 12%, 88%이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는 각각 32%, 68%를 차지했다. 롯데마트에서는 수입 맥주 매출 신장률이 2012년 15.8%에서 올해 상반기 33.2%로 높아졌지만 국산 맥주는 2011년 1.3%에서 2012년 -1.4%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무려 9.8%나 곤두박질쳤다.
◇국산만 손발 묶는 '역차별 제도'=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수입 맥주 수요가 늘고 있지만 최근 이 같은 급격한 시장변화 뒤에는 국산 맥주에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규제가 한몫 한다는 지적이다. 주세법상 과세 기준을 국산과 수입제품에 다르게 적용하고, 할인제한 규제 역시 국산 맥주에만 엄격하게 적용해 수입제품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세, 교육세 등 각종 세금 세율은 국산과 수입산에 똑같은 적용되지만 과세 표준이 다르다. 주세법에 따르면 국산은 제조원가에 이윤을 붙인 금액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계산하는 반면, 수입 맥주는 수입가격에 관세만 붙인 것에 세금을 매긴다. 즉 국산 과세표준에는 원재료비, 인건비, 제조 경비는 물론 광고비, 판매관리비, 영업 외 손익 마진까지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세금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수입산은 원가, 운반료, 관세만 포함돼 세금이 낮아진다.
실제로 같은 맥주 1병(330㎖)이라도 국산인 '뉴하이트(출고가 795.53원)'의 경우 주세(268.96원), 교육세(80.69원), 부가가치세(72.32원) 등 총 421.97원의 세금이 매겨지는 반면 A 수입 맥주는 주세(224.45원), 교육세(67.33원), 부가세(55.86원) 등 총 347.64원의 세금만 붙는다. 그런데 판매가격을 확인한 결과 모 편의점에서 뉴하이트는 1400원에 팔리는 데 비해 A 수입 맥주는 305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수입맥주가 세금은 훨씬 적게 내고도 이윤은 많이 챙겨가고 있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는 다양한 나라 제품이 판매되는 게 긍정적이지만 국산이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산은 '손발' 묶인 채 마케팅 경쟁=수입 맥주는 세금을 더한 가격에다 이윤을 자유롭게 책정해 판매가를 정할 수 있다 보니 가격을 자율적으로 올리거나 내리고, 이 점을 이용해 마케팅도 보다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반면 국산은 할인제한 규제 적용을 엄격하게 받고 있다. 국세청은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통해 국산 맥주를 출고가 이하로 팔 수 없도록 하고, 증정품도 거래 금액의 5%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반면 수입맥주는 출고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수입업체들이 수입가만 표기, 마진을 조정해 판매가를 유동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고가 증정품을 붙일 수 있어 고객 몰이에 유리한 구조다. 한 맥주업체 관계자는 "국산은 맥주 6캔 묶음 판매가가 7000원이라면 증정품으로 '신라면' 하나도 붙이기 어려운데 수입 맥주는 판매가가 명확하지 않아 더 좋은 증정품을 내걸 수 있다 보니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들도 수입 맥주 판매 확대에 한몫 하고 있다. 상시적으로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중간 유통단계 없이 자체 수입하는 방식으로 물량공세에 나서고 있다.
박미영기자 my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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