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0명 벤처` 세계적 기업 눌렀다

모비스, 국제 공개입찰서 굴지의 기업 제치고 SW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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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20명 벤처` 세계적 기업 눌렀다
모비스 시스템개발실에서 직원들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중앙통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ICT간 융합이 가속화 되면서 연구현장에서 ICT기술이 기본 인프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과학기술과 ICT를 근간으로 하는 융합이 연구ㆍ기술개발 현장과 산업계는 물론 의료, 에너지, 복지 등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에 새 길을 열 `융합으로 새 길 여는 과학기술ㆍICT' 기획을 연중 시리즈로 진행하면서 1회 프롤로그에서 과학기술ㆍICT 융합의 큰 흐름을 분석하고 전문가 좌담을 통해 관련 이슈를 짚어봤다.(8월29일자 1, 13, 14면) 시리즈 1부에서는 과학기술과 ICT 융합이 이뤄지고 있는 산업과 연구현장을 소개하고 기업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싣는다.

■ 1부 과학ㆍICT 융합빅뱅
① 기초과학에 숨결넣는 ICT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양재동 모비스 시스템개발실. 전 직원 스무명 남짓인 벤처기업의 개발자 10여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천장 쪽에 나란히 배치된 모니터는 개발중인 시스템 상황을 시시각각 보여주고 있었다. 개발자들은 전체 모니터를 보면서 본인이 맡은 작업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들이 개발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7개국이 22조원을 넘게 들여 공동으로 짓고 있는 핵융합에너지 실험장치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들어갈 중앙제어시스템. 거대 핵융합장치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단위장비들을 제어하는 중앙통제시스템(CFS)으로, 인간으로 치면 `대뇌'에 해당한다.

한국의 작은 SW 벤처기업이 이 거대과학 장치의 중앙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과학계에서 `쿠데타' 같은 일이다. 전체 SW산업 기반이 약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 SW는 명맥을 찾기 힘든 게 국내 현실. 이런 불모의 환경에서 모비스는 수백∼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세계적 SW기업들을 국제 공개입찰에서 제치고 국내 과학기술 역사상 최초의 기초과학 SW 수출을 이뤄냈다.

◇'꿈의 에너지' 장치 두뇌 개발= 프랑스 남부 카다라시에 짓고 있는 ITER은 미래 `꿈의 에너지'로 주목받는 핵융합이 실제 공학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시설이다.

수소 원자간 핵융합은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같은 무게의 연료당 30배 이상, 석탄 같은 화석연료와 비교하면 100만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낸다. 원료인 중수소도 바닷물에 인류가 4억년간 쓸 만큼 들어있어 거의 무한정 쓸 수 있다. 세계 7개국이 사상 최대규모 국제공동 R&D를 펼치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오는 2019년까지 ITER 건설을 마치고 2040년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모비스는 이 사업에서 CFS 외에도 핵심 장비인 초전도코일 전원공급장치 제어시스템과, 응급상황에 모든 장비와 시설을 안전하게 제어하는 중앙안전관리시스템(CIS)도 공급한다. 이중 CFS와 CIS는 ITER를 이루는 3대 중앙시스템에 포함된다. 핵심시스템 3개 중 2가지를 코리아의 작은 벤처기업이 따낸 것.

◇대기업 하청 IT업체서 `제2의 창업'= 회사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0년 설립 후 삼성전자에 통신단말기를 공급하면서 근근히 사업을 해오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 과감하게 하청관계를 스스로 끊고 기초과학 SW업체로 `제2의 창업'을 한 것. 2008년 금융위기 사태를 맞아 단말기 공급부문에서 큰 손해를 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지헌 대표는 "2009년 어느 날 직원들과 심각하게 현황에 대한 토론을 벌인 후 갑자기 관계를 끊었다"며 "대책 없이 관계부터 정리하고 보니 더 이상 퇴로가 없어 더 절박하게 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중이온가속기 등 거대과학 장치 건설계획이 수립될 시기. 그러나 기본툴인 SW 분야는 불모지였다. 회사는 주특기인 통신과 SW 기술력을 살려, 거대과학 시설물 제어용 국제표준 플랫폼인 `에픽스(EPICS)'를 파고들었다. 매출이 급감하고 직원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가운데도 약 2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 2년만인 2011년 가속기용 주파수 정밀제어시스템(LLRF제어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방사광가속기에서 전자 뭉치를 펴주는 장치인 언듈레이터(Undulator) 제어시스템과, 수백개 장비로 구성된 가속기 전체를 통제하는 중앙통제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모두 ITER 제어시스템 수주의 주춧돌이 됐다. 회사의 기술력이 국가핵융합연구소에 알려지면서 ITER에서만 3건의 수출이 성사됐다. 총 규모는 130억원이 넘는다. 방사광가속기에서도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IT 접목하니 과학문제 쉽게 풀려"=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특히 주파수, SW 등 IT 노하우가 유용하게 쓰였다. 김 대표는 "통신주파수 제어기술을 가속기 전자제어에 바로 쓸 수 있었다"며 "기초과학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IT 방법론으로 많은 기술간 융합과 문제 해결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한 기술 융합, 기술산업화 시도는 아직 미진하다.

김 대표는 "수천억 이상을 들여 연구장비만 만들고 끝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거대과학 시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여기서 많은 기술이 파생되고 미래 먹거리와 산업이 태동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과학ㆍICT 융합은 이미 진행형=핵융합과 가속기, 우주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ICT 활용과 융합은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양성자 1000억개의 충돌 현상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하기 위해 5∼6층 건물 크기의 초대형 디지털카메라 장치(CMS 검출기)를 가동한다. 초당 약 400MB, 연 10페타바이트(100만GB)에 이르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기 위해 세계 각 국을 연결한 그리드컴퓨팅 기술을 이용한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슈퍼컴퓨터는 인간 생명의 비밀을 푸는 휴먼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을 도왔고, 이후 프로테오믹스, 지노믹스 등 시스템생물학의 지평을 열었다. 세계 우주과학자들은 `심우주인터넷'을 개발, 화성 등 우주탐사 시대를 열고 있다.

태양계의 끝을 지나 성간 우주를 달리고 있는 `보이저1호'와 지구를 이어주는 끈도 통신기술이다.

특별취재팀=안경애, 이준기, 허우영, 남도영 기자 naturean@
디지털타임스ㆍ미래창조과학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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