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도가니`
"한국영화에 모처럼 인생과 세상을 깊게 성찰하는 작품이 나왔다."
영화 `도가니`(22일 개봉)에 대해 이렇게 말하자니 걱정이 된다. "음, 의미는 있는데 재미는 없다는 이야기로군." 이렇게 지레짐작하는 이가 있을까봐서다. 단언컨대, 이 영화는 재미있다. 2시간 5분의 러닝 타임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미 결론을 알고 보는데도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서 몰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도가니`는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보통의 정서를 지닌 사람이라면, 귀를 막아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지영 작가는 이를 소설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세상의 진실에 대해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 `도가니`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원작 소설이 지닌 이야기의 힘이다.
군대에 있을 때 소설을 읽고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배우 공유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이 영화가 매혹적인 것은, 상당 부분 그의 열연에 힘입고 있다. "스타였던 공유가 이제 배우가 됐다"는 평가는 다소 유치하긴 해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쓴 공지영 작가와 본명이 공지철인 배우 공유, 즉 공씨 패밀리가 숨은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열망으로 이뤄낸 수작이다. 공씨 패밀리가 만든 `공공의 힘`이 얼마큼의 티켓파워로 작용할지 궁금한 것은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닐 것이다.
전작 `마이 파더`에서 입양아 이야기를 다룬 황동혁 감독은 사회 문제를 담은 작품에서 뜨거움과 차가움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싶다. 영화 곳곳에서 관객의 슬픔을 자극하며 목울대를 뜨겁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등장 인물의 대사로 직접 고발하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주는 연출력을 발휘한다.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의 카르텔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마구 폭발하지 않고 긴 울림으로 남는다.
극중 주인공 강인호(공유)는 청각장애학교에 부임한 미술 교사다.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아픈 딸 소라를 돌보고 있는 어머니(김지영) 말대로 `우짯든동 학교에 껌 딱지처럼 들러붙어` 살려고 한다. 학교 행정실장이 요구하는 발전기금 5000만원을 어머니에게 부탁해 마련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청각장애아들과 가깝게 지내보려고 애쓰던 어느 날, 그는 10대 소녀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가 없이 조부모 밑에서 크는 소년 형제는 남자 교사의 남색 노리개 대상이 돼 왔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후 인호는 인권센터 간사 서유진(정유미)과 함께 아이들을 지켜주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학교 권력을 비호하는 세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원작 소설은 인호가 무기력함을 느낀 나머지 서울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그가 서울로 가던 차를 돌려서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재판정의 싸움에 최후까지 나서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호가 경찰의 살수차가 뿌려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성폭행 범죄에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계속 되뇌는 대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공유의 연기가 가장 빛난 대목은 어머니 말대로 학교의 부조리에 눈감고 순응하며 살기 위해 난을 들고 교장실에 찾아갔을 때다. 세상의 치욕을 감당하며 살려는 일상인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 역을 맡은 세 아역배우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로 이 배우들을 만나면 하나 하나 껴안아 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 중에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실감나게 해 냈다.
쌍둥이인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아 1인 2역을 해 낸 성우 출신의 배우 장광은 보는 이의 분노를 일으키는 역에 충실했다.
이 영화를 본 후 진실을 가리는 음험한 힘의 카르텔에 대해 뜨거운 분노의 심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공포와 무력감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수용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자신이 가해자를 비호하는 쪽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청소년 관람불가.
문화일보=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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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22일 개봉)에 대해 이렇게 말하자니 걱정이 된다. "음, 의미는 있는데 재미는 없다는 이야기로군." 이렇게 지레짐작하는 이가 있을까봐서다. 단언컨대, 이 영화는 재미있다. 2시간 5분의 러닝 타임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미 결론을 알고 보는데도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서 몰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도가니`는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보통의 정서를 지닌 사람이라면, 귀를 막아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지영 작가는 이를 소설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세상의 진실에 대해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 `도가니`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원작 소설이 지닌 이야기의 힘이다.
군대에 있을 때 소설을 읽고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배우 공유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이 영화가 매혹적인 것은, 상당 부분 그의 열연에 힘입고 있다. "스타였던 공유가 이제 배우가 됐다"는 평가는 다소 유치하긴 해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쓴 공지영 작가와 본명이 공지철인 배우 공유, 즉 공씨 패밀리가 숨은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열망으로 이뤄낸 수작이다. 공씨 패밀리가 만든 `공공의 힘`이 얼마큼의 티켓파워로 작용할지 궁금한 것은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닐 것이다.
전작 `마이 파더`에서 입양아 이야기를 다룬 황동혁 감독은 사회 문제를 담은 작품에서 뜨거움과 차가움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싶다. 영화 곳곳에서 관객의 슬픔을 자극하며 목울대를 뜨겁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등장 인물의 대사로 직접 고발하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주는 연출력을 발휘한다.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의 카르텔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마구 폭발하지 않고 긴 울림으로 남는다.
극중 주인공 강인호(공유)는 청각장애학교에 부임한 미술 교사다.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아픈 딸 소라를 돌보고 있는 어머니(김지영) 말대로 `우짯든동 학교에 껌 딱지처럼 들러붙어` 살려고 한다. 학교 행정실장이 요구하는 발전기금 5000만원을 어머니에게 부탁해 마련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청각장애아들과 가깝게 지내보려고 애쓰던 어느 날, 그는 10대 소녀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가 없이 조부모 밑에서 크는 소년 형제는 남자 교사의 남색 노리개 대상이 돼 왔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후 인호는 인권센터 간사 서유진(정유미)과 함께 아이들을 지켜주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학교 권력을 비호하는 세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원작 소설은 인호가 무기력함을 느낀 나머지 서울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그가 서울로 가던 차를 돌려서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재판정의 싸움에 최후까지 나서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호가 경찰의 살수차가 뿌려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성폭행 범죄에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계속 되뇌는 대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공유의 연기가 가장 빛난 대목은 어머니 말대로 학교의 부조리에 눈감고 순응하며 살기 위해 난을 들고 교장실에 찾아갔을 때다. 세상의 치욕을 감당하며 살려는 일상인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 역을 맡은 세 아역배우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로 이 배우들을 만나면 하나 하나 껴안아 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 중에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실감나게 해 냈다.
쌍둥이인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아 1인 2역을 해 낸 성우 출신의 배우 장광은 보는 이의 분노를 일으키는 역에 충실했다.
이 영화를 본 후 진실을 가리는 음험한 힘의 카르텔에 대해 뜨거운 분노의 심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공포와 무력감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수용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자신이 가해자를 비호하는 쪽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청소년 관람불가.
문화일보=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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