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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시론] 경로 의존성과 전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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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상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ㆍ기술경영대학원 교수


과학기술이나 신상품의 발전을 지켜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관련하여 학자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경로 의존성'과 `전환 비용'이란 개념이 있다.

경로 의존성이란 어떤 기술이나 제품의 발전이 그 결과 이상으로 발전되어온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발사한 우주왕복선인 엔데버호의 연료 탱크에는 두 개의 `솔리드 로켓 부스터'가 붙어 있다. 이 추진 로켓의 크기가 로마시대 이래로의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즉, 이 장치는 미국 북서부 유타에 있는 공장에서 남동부 플로리다의 우주선 발사대까지 기차로 운반되었다. 추진 로켓이 철로 폭보다 크면 터널을 지나갈 수 없으므로 로켓의 크기는 미국의 기차 궤도의 폭보다 크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미국의 초기 기차 궤도 간격은 단거리 지역 철도회사들의 난립으로 다양한 규격이 존재하였다. 이후 각 지역 철도회사들의 인수합병과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에 따라 동북부지역 표준인 영국식 기차 궤도 표준으로 통일되었다. 한편 영국의 기차는 1800년대초 광산에서 광석 운반용으로 사용되던 궤도 마차에 증기기관을 얹어 일반 운송에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마차는 약 2000년 전 영국을 정복했던 로마 병정들이 건설한 로마로 통하는 길을 이용하면서 바퀴의 폭 143.5센티미터가 결정되었다. 고대 로마 마차는 말 두 마리가 끌었으므로 로마로 통하는 길의 폭은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폭에 맞추어졌다. 따라서 우주 왕복선의 로켓의 크기의 결정은 2000년 이상의 역사적 사건들의 연쇄적 발전 경로를 따르는 경로 의존성을 갖는다.
경로 의존성에 더해서 기술이나 상품의 발전이나 확산에 영향을 주는 것이 전환 비용이다. 한 기술이나 상품이 확산된 후, 뒤에 나타나는 경쟁 기술이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력이나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학습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용자들은 필요한 학습을 수행하기보다는 종전의 것을 고집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예를 들면 1867년 레밍턴 1호기라는 타자기를 설계하면서 자판의 배열을 QWERTY의 순서로 하였다. 당시의 타자기는 종이가 기계 안에 숨겨져서 네 번째 줄을 타이프 치기 전에는 첫 줄이 보이지 않아 잘못된 글자를 친 줄 모르게 되어 있었다. 또한 두개의 키를 연속적으로 치면 부딪혀 엉뚱한 결과가 찍히기도 하였다. 따라서 QWERTY 배열은 자주 사용하는 문자를 가능한 멀리 퍼져있도록 하는 최적의 설계였다. 그러나 이 배열은 자주 쓰는 글자들이 자판 왼쪽에 몰려 있어서 80~90%가량을 왼손으로 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개의 키가 부딪히는 기술적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많이 쓰는 글자를 아랫줄에 배치하고, 4줄 대신 3줄로 줄이고, 5개의 단모음과 많이 쓰는 3개의 자음을 가운데 배치하고, 양손 사용을 균형 잡는 등의 새로운 상품이 속속 개발되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이미 QWERTY 자판에 익숙해져 다시 타자를 익히는 것은 큰 전환 비용이 되었기에, 새로운 자판들이 비록 기술적으로 우월한 상품이었지만 지배적 상품이 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