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나팔바지가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바지를 입은 사람이 촌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즈음 이 바지는 다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도 꼭 패션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와 올초까지만 해도 닷컴(dot-com)이라는 이름만 걸어 놓아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를 받기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게 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닷컴의 비즈니스 플랜은 한결같이 단순합니다. 예전부터 사람이 해오던 사업을 온라인으로 하겠다는 거지요. 닷컴기업의 대명사격인 아마존(Amazon.com)이 처음에 시작한 사업은 온라인 책방이었습니다. 책방이 새로운 아이디어일리 없지만, 온라인으로 하겠다니까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이 아마존 때문에 미국 방방곡곡의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대형서점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이 벌벌 떨었습니다. 이베이(eBay)의 사업모델은 경매지요. 경매가 새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전통적인 경매기업은 이베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세웠는지 모릅니다.
온라인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누가 더 기발한 생각을 먼저 하나 경쟁하듯, 너도 나도 지혜를 짜내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팔겠다고 했습니다. 오프라인기업은 - 이 말도 결국 온라인기업 위주의 사고에서 나온 유행어지만 - 온라인 경쟁에서 뒤질세라 이제 갓 태어난 신생 기업에서 배우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유행이 지난 옷처럼, 기업을 둘러싼 모든 가치관은 뒤집혀졌습니다. 인해전술처럼 수를 앞세운 회원 수 또는 페이지 뷰(page view)라는 마술 앞에 수익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는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 한 때 5000포인트를 넘던 나스닥(Nasdaq)이 40% 이상 하락한 지금에 와서는 예전의 가치가 부활했습니다.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익 원칙이 되살아나고, 온라인기업은 예전부터 사업해오던 기업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발언에 무게가 실립니다. 젊게 보이려고 머리에 물들이던 사장은 요즘에는 노련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경제도 유행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했던,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진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허무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은 누가 이런 굿판을 벌였는 지를 살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뒤에는 벤처캐피털리스트(VC)라는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신경제의 상징(the icons of the New Economy)이라는 평가를 받는 집단입니다. 옛날의 경제가 은행가 중심이었다면, 신경제는 VC 중심의 경제입니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경제조직이지만, VC는 투자해서 수익을 나눠먹는 경제인입니다. 따라서 은행은 빌려준 돈을 떼일까 두려워 담보를 중시합니다. 기업은 틀을 갖출 수록 돈을 빌리기 쉽겠죠. 하지만 아이디어만 있는 사람은 돈을 구경하기 힘들 것입니다. 반면, VC는 수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현재보다는 미래의 수익가능성을 중시하고, 싹수 있는 기업을 찾아다니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이런 VC들이 지난 1998년 1월부터 2000년 7월까지 인터넷기업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650억달러입니다. 모든 가치가 다시 옛날로 복귀하는 요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얼마전 거라지닷컴(Garage.com)이라는 회사가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콘퍼런스는 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패널에 참석한 꽤나 유명한 VC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요즘 B2B, B2C, 인터넷 콘텐츠 등과 관련된 비즈니스플랜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닷컴기업은 이미 철 지난 옷이라는 확인을 해준 셈입니다.
하지만 유행은 다시 되돌아 옵니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인터넷을 통한 사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분명히 다시 나타날 겁니다. 거라지닷컴의 CEO와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법률회사에서 나온 파트너 변호사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기가 있다. 다만 어떤 주기인지를 모를 뿐이라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 많은 VC의 주기가 지금까지 똑 같았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서로 다른 주기 이야기가 나오는지.
VC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보고 싶습니다. 남들이 다 나팔바지를 입는데 나만 몸에 꼭 끼는 쫄바지를 입고 다니기가 어렵다는 얘기지요. 이름이 VC이니 모험적인 투자를 많이 하겠거니 많은 사람이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혜안을 갖고 앞서가는 VC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남이 하는 데로 쫓아가지요. VC도 남의 돈을 끌어모아 펀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하는 대로 투자하다가 실패하면 변명거리나 있지만, 혼자 유별나게 굴다가 실패하면 답변이 궁색해지니까요. 그래서 세상에게 가장 모험을 싫어하는 집단이 벤처캐피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서로 다른 주기를 이야기하는 건 물론 투자실패에 대한 변명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에 비유하면, 실리콘밸리에서도 유행을 창조하는 패션디자이너형 VC는 몇이 안되고, 나머지 VC는 요즘 어떤 옷이 유행하는 지를 파악하려고 눈치를 살피는 동대문상가의 상인이라고 할까요. 주식시장의 개미군단은 동네의 옷가게 주인이고요.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도 꼭 패션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와 올초까지만 해도 닷컴(dot-com)이라는 이름만 걸어 놓아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를 받기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게 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닷컴의 비즈니스 플랜은 한결같이 단순합니다. 예전부터 사람이 해오던 사업을 온라인으로 하겠다는 거지요. 닷컴기업의 대명사격인 아마존(Amazon.com)이 처음에 시작한 사업은 온라인 책방이었습니다. 책방이 새로운 아이디어일리 없지만, 온라인으로 하겠다니까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이 아마존 때문에 미국 방방곡곡의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대형서점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이 벌벌 떨었습니다. 이베이(eBay)의 사업모델은 경매지요. 경매가 새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전통적인 경매기업은 이베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세웠는지 모릅니다.
온라인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누가 더 기발한 생각을 먼저 하나 경쟁하듯, 너도 나도 지혜를 짜내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팔겠다고 했습니다. 오프라인기업은 - 이 말도 결국 온라인기업 위주의 사고에서 나온 유행어지만 - 온라인 경쟁에서 뒤질세라 이제 갓 태어난 신생 기업에서 배우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유행이 지난 옷처럼, 기업을 둘러싼 모든 가치관은 뒤집혀졌습니다. 인해전술처럼 수를 앞세운 회원 수 또는 페이지 뷰(page view)라는 마술 앞에 수익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는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 한 때 5000포인트를 넘던 나스닥(Nasdaq)이 40% 이상 하락한 지금에 와서는 예전의 가치가 부활했습니다.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익 원칙이 되살아나고, 온라인기업은 예전부터 사업해오던 기업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발언에 무게가 실립니다. 젊게 보이려고 머리에 물들이던 사장은 요즘에는 노련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경제도 유행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했던,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진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허무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은 누가 이런 굿판을 벌였는 지를 살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뒤에는 벤처캐피털리스트(VC)라는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신경제의 상징(the icons of the New Economy)이라는 평가를 받는 집단입니다. 옛날의 경제가 은행가 중심이었다면, 신경제는 VC 중심의 경제입니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경제조직이지만, VC는 투자해서 수익을 나눠먹는 경제인입니다. 따라서 은행은 빌려준 돈을 떼일까 두려워 담보를 중시합니다. 기업은 틀을 갖출 수록 돈을 빌리기 쉽겠죠. 하지만 아이디어만 있는 사람은 돈을 구경하기 힘들 것입니다. 반면, VC는 수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현재보다는 미래의 수익가능성을 중시하고, 싹수 있는 기업을 찾아다니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이런 VC들이 지난 1998년 1월부터 2000년 7월까지 인터넷기업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650억달러입니다. 모든 가치가 다시 옛날로 복귀하는 요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얼마전 거라지닷컴(Garage.com)이라는 회사가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콘퍼런스는 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패널에 참석한 꽤나 유명한 VC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요즘 B2B, B2C, 인터넷 콘텐츠 등과 관련된 비즈니스플랜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닷컴기업은 이미 철 지난 옷이라는 확인을 해준 셈입니다.
하지만 유행은 다시 되돌아 옵니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인터넷을 통한 사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분명히 다시 나타날 겁니다. 거라지닷컴의 CEO와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법률회사에서 나온 파트너 변호사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기가 있다. 다만 어떤 주기인지를 모를 뿐이라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 많은 VC의 주기가 지금까지 똑 같았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서로 다른 주기 이야기가 나오는지.
VC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보고 싶습니다. 남들이 다 나팔바지를 입는데 나만 몸에 꼭 끼는 쫄바지를 입고 다니기가 어렵다는 얘기지요. 이름이 VC이니 모험적인 투자를 많이 하겠거니 많은 사람이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혜안을 갖고 앞서가는 VC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남이 하는 데로 쫓아가지요. VC도 남의 돈을 끌어모아 펀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하는 대로 투자하다가 실패하면 변명거리나 있지만, 혼자 유별나게 굴다가 실패하면 답변이 궁색해지니까요. 그래서 세상에게 가장 모험을 싫어하는 집단이 벤처캐피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서로 다른 주기를 이야기하는 건 물론 투자실패에 대한 변명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에 비유하면, 실리콘밸리에서도 유행을 창조하는 패션디자이너형 VC는 몇이 안되고, 나머지 VC는 요즘 어떤 옷이 유행하는 지를 파악하려고 눈치를 살피는 동대문상가의 상인이라고 할까요. 주식시장의 개미군단은 동네의 옷가게 주인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