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8일 동성 동반자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벌써부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간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동성혼을 공론장에 올리는 것을 금기시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 법원이 동성부부의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함에 따라 다른 사회보장제도뿐만 아니라 동성혼의 합법화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시작됐다. 소성욱 씨는 반려자인 김용민 씨와 2019년 결혼했다. 소씨는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뒀고, 이후 김씨가 그를 경제적으로 부양했다.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는 지역 가입자인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를 건보공단에 문의했다. 건보공단 직원은 두 사람이 동성이며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성 사실혼 부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건보공단의 방침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 사실혼 지위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해 10월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건보공단은 "담당자의 업무처리에 착오가 있었다"며 피부양 자격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번복했다. 건보공단은 소씨를 다시 지역 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다. 소씨는 2021년 2월 건보공단을 상대로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달랐다. 상고심 재판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을 차별대우해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예전 같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판결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결이 옳다고 보고 소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현행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동성 부부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법조계에서는 다른 사회보장제도까지 권리를 인정받기에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실혼 관계의 동성 부부에게도 일부나마 법적 권리를 보장한 것으로 논의가 확장될 수 있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동성혼 합법화 논의도 한층 활성화될 수 있다. 이날 대법원의 '동성 동반자'라는 용어가 주목됐다. 항소심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봤다. 동반자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짝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용어로 "사실혼 관계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 취지를 담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번 판례를 통해 당장 다른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권리까지 인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민연금법·고용보험법에서는 관련 규정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소씨 부부의 경우 사실혼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제도 적용 대상이 되긴 어렵다. 이번 판결에서 따져본 국민건강보험법은 1976년 개정을 통해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2심에서도 법률에 근거가 없으면서도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행정적 재량권'을 행사했다는 게 차별이라는 판단 근거였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대법원은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등 3건을 판결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