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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칼럼] 혁신창업 `심지`를 되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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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장
[안경애 칼럼] 혁신창업 `심지`를 되살려라
"승리의 여신 '니케'가 흔들리고 있다." 스포츠용품 업계의 대명사, 나이키에 대한 얘기다. 나이키는 경영전략 실패로 최근 매출이 줄어들면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하루에만 주가가 20% 가까이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39조원 증발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직접판매를 고집한 게 주된 원인이다.

그런 나이키의 창업 초기 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명의 육상선수 필 나이트는 1964년 나이키를 창업한 후 6년간 월급 한 푼 가져가지 못한 채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죽음의 계곡을 지난 나이키는 '스포츠용품 업계의 코카콜라'가 됐다. 전설적 마케팅 전략과 함께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에어쿠션 같은 혁신기술이었다.

국내 혁신창업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에 빠졌다. R&D 투자 결과물을 무기로 사업 전선에 뛰어든 국내 실험실 창업기업들이 유치한 연간 투자총액은 2022년 1조709억원에서 작년 4318억원으로 급감했다.

대학교수, 대학원생, 연구원 등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창업한 3150개 기업을 조사한 '2023년 실험실 창업 실태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10인 이상 종사자를 둔 실험실 창업기업 515곳 중 고성장기업 비율이 31.6%로, 국내 전체 기업 중 고성장기업 비율 2.2%의 14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탄한 기술을 가지고 출발한 덕분이다.

고성장 기업은 최근 3년간 매출액 및 상용근로자가 20% 이상 증가한 기업을 의미한다. 국내 실험실 창업기업 종사자는 2022년 기준 1만8136명, 연간 매출 총액은 2조원에 육박했다.

이들 기업이 창업 초기 도태되지 않고 버틴 데는 투자생태계의 힘이 컸다. 3150개 기업 중 17.4%인 548곳이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기업당 평균 4.9회, 6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풍부한 마중물 덕분에 2015년까지 연 10건이 채 안 되던 실험실 창업기업 대상 투자는 2018년 처음 100건을 넘어섰고, 2021년엔 500건에 육박했다. 총 투자규모는 2016년 약 155억원에서 2018년 약 1007억원, 2019년 3527억원, 2021년 약 8807억원으로 급증했다. 2022년엔 1조709억원으로 처음 1조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그래프가 날카롭게 꺾였다. 2022년과 비교해 투자건수도 475건에서 231건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목할 점은 투자유치를 받은 548개 실험실 창업기업 중 대다수가 시드, 시리즈A, 프리 시리즈A 단계로, 이제 막 시장에서 꽃봉오리를 터트리려 하는 초기단계라는 것이다. 특히 시드 투자를 받은 기업이 절반 가까운 수준이다. 10년 가까이 늘어온 실험실 창업기업 대상 투자가 수년 전 수준으로 뒤걸음질 친 것은 최근의 스타트업 투자 한파와 무관하지 않다.

실험실 창업기업 4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스타트업들이 처한 현실이 더 여실히 드러났다. 투자생태계가 잘 작동하던 2020년과 2021년에 창업한 기업이 400개 기업 중 43%인 173개인데, 창업자 5명 중 4명은 자금 확보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또 창업 실패와 재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성공할 때까지의 생계유지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공공기술 이전 비용 부담, 기술이전 후 후속 지원 부족, 국가 R&D 성과 양도제한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뿐 아니라 얼어붙은 제도도 '미래 고성장 기업'의 발걸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정부가 2025년 주요 R&D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발표하면서 2023년보다 늘었다고 설명했지만, 기술사업화 예산은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스타트업 투자생태계가 얼어붙어 있으면 정부라도 나서줘야 하는데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술사업화 예산은 여전히 가뭄이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에 비해 전체 R&D 가운데 사업화 기술개발(R&BD) 투자 비중이 크게 낮은데, 그마저 깎인 후 회복되지 않고 있으니 그 파장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인공지능(AI)부터 에너지, 반도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국내외 스타트업들은 특유의 민첩성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거대 기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AI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오픈AI와 앤스로픽은 각각 2015년과 2021년에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힘있는 스타트업들은 과거에 없던 산업을 만들고 세계 돈의 흐름과 국력까지 바꿔놓는다. '고성장 기업'의 DNA를 갖고 태어난 실험실 창업기업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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