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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서가] 1792년 선비 1만명의 연명 상소, 정치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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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이상호 지음 /푸른역사 펴냄
[논설실의 서가] 1792년 선비 1만명의 연명 상소, 정치를 바꾸다


1792년(정조 16년)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으로 유생들이 모였다.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경상도 북부 곳곳에서 올라온 영남의 선비들이었다. 이들의 손에는 유학(幼學·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 이우 등 총 1만57명이 연명한 상소가 있었다. 조선 최초의 '만인소'(萬人疏)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감히 발을 싸매고 문경 새재를 넘어 피를 쏟는 듯한 정성으로 대궐 문에 부르짖습니다."

책은 영남 유생들이 주도한 만인소를 생생하게 복원한 책이다. 정조의 명에 따라 1792년 음력 3월 영남 남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거시험인 '도산별과'가 치러진 일부터 이후의 정치적 갈등, 만인소 운동 과정 등을 추적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필사본 '천휘록'(闡揮錄)에 들어 있는 '임자소청일록'(壬子疏廳日錄)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소개하되, 역사적 장면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책은 29세의 젊은 안동 선비 류이좌(1763∼1837)를 중심으로 만인소 운동을 설명한다. 만인소 운동의 배경, 영남 유림의 상경 과정, 소두(疏頭·소의 주동자)의 임명과 상소문 마련, 처리 과정, 비용 등을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자기 입으로 공론화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면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정조의 노회한 속셈 등이 독자의 시선을 끈다.
그러면서 1만57명이 연명했다는 사실이 단순한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만백성의 이름'에서 보듯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모든 백성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유교적 정치 이념과 관계 있을 것이다. 만인소 운동을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의 뿌리로 지적하는 대목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책이 딱딱하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지은이의 유려한 글솜씨에 힘입어 어지간한 사극 드라마를 능가하는 재미가 도드라진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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