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는 참 다양합니다만, 그중에서도 저는 이런 작가입니다. '그림' '책' '작가'라는 말 그대로 그림의 힘이 이끄는 이야기를 책이라는 그릇에 담고 짓고 노는 사람이지요. 제 책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하고 같이 놉니다."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꼽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50·사진)는 첫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에서 자신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책에는 회화 전공자에서 아트북을 공부한 학생,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치열하고 촘촘한 창작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작가는 에세이 출간을 기념해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그림책은 되게 재미있는 매체"라며 "기본적으로 어린이 것이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흔히 그림책이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모든 연령을 아우른다"며 "유아 카테고리 안에서 교육 목적으로만 소비하기보다 하나의 예술 영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장르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선'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속으로' 등이 있다. 대부분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 '글 없는 그림책'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글은 순서가 있잖아요. 서사가 있어서 아주 짧은 문장일지라도 이미 그 안에 어떻게 읽으라는 지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봐야 되고 어떻게 의미를 구성해야 되는지 오롯이 감상하는 사람한테 가 있죠. 그 사이 인내심을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예술교육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작가는 그림책에 글을 넣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의 스위치가 켜지면 독자로서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고 창조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작가로서 '내가 열심히 숨겨놓은 장치들을 알아봐주면 좋겠다'라는 조바심은 있지만, 어린이 독자에 대해서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글로 채운 에세이를 출간한 건 그림책을 만들며 작은 뭔가를 매일 발견하는 여정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블로그에 글을 일기처럼 쭉 써왔는데 블로그 회사가 문들 닫으면서 글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어요. 디지털 세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여태까지 내가 해온 책 작업이 떠다니는 글을 모아 물리적 실체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작가가 처해 있는 환경과 맥락, 상황에서 그때의 작업이 나오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전하면 그림책을 둘러싼 세계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어 글들을 책으로 묶어두기로 한 거죠."
총 4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작가의 초창기 작업 노트, 엄마가 돼 아이들과 씨름하며 보냈던 순간들, 외국 편집자와 일했던 다양한 일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락 연설문까지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책의 물성을 끊임없이 연구해온 작가의 이야기인 만큼 초판은 누드 제본 형식의 독특한 판형으로 선보인다.
박은희 문화전문기자 ehpark@dt.co.kr
이수지 작가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한 첫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비룡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