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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의 정치사기] 고구려·백제 유민 증오심에 기댄 궁예·견훤…유권자 적개심에 기생하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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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의 정치사기] 고구려·백제 유민 증오심에 기댄 궁예·견훤…유권자 적개심에 기생하는 정치권
궁예와 견훤 열전이 실린 삼국사기<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국가재정의 문란과 가혹한 수취로 혼란이 극심한 900년대, 나라는 온통 전쟁판이었다. 중앙 귀족들은 권력다툼만 벌였고, 가혹한 수취에 지친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틈을 타 '성주', '장군'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지방세력이 생겨났고, 분열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한 쟁투가 시작됐다. 당시 견훤이 호남 지역에 세운 후백제와 궁예가 강원·경기를 중심으로 세운 후고구려(태봉)는 선두 주자였다. 이들은 경쟁하듯이 다른 지방세력의 성을 탈취했고, 영토를 넓혀나갔다.

두 사람은 점령한 지역의 백성들을 선동해 철저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했다. 궁예는 신라 정부에 차별 받은 고구려 유민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지난날 신라가 당에 군사를 청해 고구려를 깨뜨렸다. 그런 까닭에 평양 옛 도읍(고구려)은 폐허가 됐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신라를 '멸도'라 부르게 하고, 영주 부석사에 행차해서 신라 왕의 영정을 칼로 내리쳤다. 견훤 역시 다르지 않았다. 호남 지역엔 백제 유민이 대다수였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 "신라의 김유신이 당병과 합세해 백제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해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라고 목놓아 외쳤다. 궁예와 견훤 모두 지역민들이 신라를 향해 가진 증오심을 철저하게 이용한 셈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달랐을까? 그가 죽으면서 남긴 <훈요십조>에는 차현 이남 금강밖의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이유는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며 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후대에 들어 훈요십조가 위작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왕건도 전쟁 과정에서 지역민들이 특정 세력에 가진 적개심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정치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 4·10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전쟁과 다르지 않다. 전장에는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다. 오로지 불타는 적개심만 존재한다. 각 당의 대표들은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상대를 향한 적개심을 무기로 활용한다. 집권 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는 매일같이 서로를 흠집내는 언사를 하고, 제3지대 정당 대표들은 자신들이 탈당한 정당을 향해 비난의 날을 세운다. 이따금씩 혐오의 정서도 드러낸다. 한 비례정당의 대표는 검찰총장 시절 자신의 가족들을 수사했던 대통령을 향해 탄핵을 부르짓는다. 선거 때마다 화두였던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논의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민생 경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지만, 여전히 각성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 참담한 건 각 당을 대표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지닌 윤리적 이슈다. 각종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인물이 제1야당 대표이며,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으로 법원에서 2년 형을 받은 인물도 비례정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도 정당을 창당하고, 보석 인용까지 호소하고 있다. 이제 정치에는 윤리와 도덕, 상식도 온데간데 없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김세희의 정치사기] 고구려·백제 유민 증오심에 기댄 궁예·견훤…유권자 적개심에 기생하는 정치권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4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시당 창당행사장에 참석해 정권 심판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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