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부교수 사직 "한달째 악몽, 수술 밀려…수만명 위태로워질 상황"
"환자 한명 판단도 조심…의도 떠나 한 나라 의료 붕괴시킨다면 돌팔이 정부"
"전공의·학생들만 괴롭혀 절망 …의료 영구히 망가뜨린 실행자들 기억해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의사 직역을 향해 "의사 면허를 국민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매년 국민들이 의사들 눈치를 살피면서 마음을 졸여야 한다면 이게 제대로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필수의료' 현장의 교수 사직이 이어졌다. 앞서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윤우성 경북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사직하며 '의대 입학정원(연 3058명) 최소 2000명 증원 및 의료개혁 패키지 정책' 강행을 비판한 데 이어서다.
19일 서울아산병원 사직의 변을 밝힌 최세훈(왼쪽) 심장혈관흉부외과 부교수, 이날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연합뉴스 사진 갈무리>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부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SNS에 '흉부외과 교수 사직의 변(辯)'을 올려 "매일 악몽을 꾸는 것만 같다. 불과 한 달 만에 이 땅의 의료가 회복불능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불과 1달 전, 우리 팀이 전부 있었을 때에는 어떤 환자가 와도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환자를 보는 것이 무섭고 괴롭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치료하면 될지 손에 잡은 듯 알면서도 여건이 안 돼 그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의사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절감하고 있다"며 "인턴·전공의·전임의 없이 수술하고 병동을 지켜온 지 이미 한달, 원체 밤새 수술하는 사람이었으니 몸이 힘든 거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정신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전공의·전임의 사직 이후 감당 가능한 수술이 절반에 못 미쳤다고 했다.
이어 "급한 환자를 우선 수술하다 보면 나머지 환자는 쌓여만 가고, 다른 곳에 보내려 해도 '수술 공장'이냐고 핀잔 듣던 '빅5' 병원들의 그 많은 환자들이 다 어디를 어떻게 찾아갈까 걱정만 한다"며 "작년에만 해도 '폐암 진단 후 1달 이내 수술하는 비율'을 따졌는데, 지금 폐암 환자들은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린다. 불과 한달 사이 그 차이가 너무 커 정신을 온전하게 가다듬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최세훈 부교수는 "당직이 아닌 날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어 무섭다. 이 상황을 도저히 못 견뎌 사직서를 낸다"며 "더 이상 새로운 '환자-의사 관계'를 만들지 않을 것이고, 제가 수술하기로 약속했던 환자들까진 어떻게든 해결하고 난 후 저는 이 자랑스러웠던 병원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저는 가장 행복한 흉부외과 의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생·전공의일 때 좋은 교육을 받았고, 외과의사로 독립했을 땐 최고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며 "만나는 전공의·학생 누구에게나 '흉부외과는 정말 좋은 과'라고, '나의 노력이 그대로 환자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는 인생을 산다'고 적극 권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정말 멋지고 값진 순간이 많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흉부외과 의사가 한명 남는다면 그게 나일 것이라 장담했는데 이렇게 떠나게 될 것이라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황금 시기, 외국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도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던 시기는 이제 끝이 났음을 안다. 정말 너무 슬프고 황당해서 요사이 계속 머리가 멍한 채로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발 의료개혁 강행을 혼란 원인으로 들었다.
최 부교수는 "환자 한명의 병도 정확하게 진단하고, 수술 계획을 세우고, 환자가 이 수술을 견딜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온 나라 의료체계를 바꾸는 건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할까. 이렇게 졸속, 강압적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며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정책으로 한 나라의 의료가 붕괴된다면 아마추어·돌팔이 정부일 뿐이다. 정말 길가는 국민 한분 한분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그렇게 잘 못 했는지'"라고 했다.
이어 "이런 파괴적인 의료정책이 정말 필요한 상태였나"라며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의사를 가장 편하게 빨리 볼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어려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전공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데 이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으로 그들 모두가 미래에 절망한 채 자발적인 사직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공의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전문의가 돼 이 땅 의학의 맥을 이어갈 사람들이다. 전공의들이 우리의 미래였기에 그들 모두가 떠난 지금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엔 절망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단 게 원통하고 또 원통하다"며 "현재 한국 의료에 문제점이 있다면 기득권 의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사명감을 갖고 공부하는 '전공의와 학생들'만을 이리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 정부가 이 정책을 고집하기 전까지는, 전공의들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배웠으며 많은 학생들이 필수의료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며 "지금은 전공의·학생 3만명이 우리 나라 의료의 미래에 절망하고 있다. 흉부외과엔 전국에 고작 100명의 전공의가 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최 부교수는 "평생 그 업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한 젊은 의사들이 다 떠난 이 때에, 정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여전히 위협과 명령으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다"며 "지금 수천, 수만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아는 저로선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저들이 환자 한명의 죽음이라도 직접 경험해 봤으면 절대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라 전체를 망하게 할 정책을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제 가장 소중한 것, 제 인생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의업, 제가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던 제 삶의 목적을 포기한다. 이 정부의 정책은 이 나라 의료를 영구히 망가뜨릴 거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차피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미래는 없다"며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 문드러져 버릴 거다.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오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느니 차라리 저는 의업을 떠난다"고 했다.
나아가 "누가 이 나라 의료를 망하는 길로 몰아가나. 누가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나. 불과 1달 전까지만 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환자를 살리던 젊은 의사들을 절망 속에 떠나가게 했나"라며 "그 떠나간 젊은 의사들이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국민이 고통 속에 죽어갈 때에, 그 책임이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간들에게 있었다는 것만은 우리 국민들께서 오래동안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