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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의 선물?…"와인·맥주, 냄새만으로 `치매·암 위험`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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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의 선물?…"와인·맥주, 냄새만으로 `치매·암 위험` 낮춘다"
AI가 생성한 이미지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체질이라도 술 마시는 자리에 동참하면 나쁘지 않을 이유 한 가지가 확인됐다.

맥주나 와인, 아니면 잘 익은 과일의 냄새를 맡는 것이 암이나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발효 식품에서 발견되는 천연 휘발성 화학물질인 디아세틸이 현재 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아난다산카르 레이 분자·세포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와인이나 맥주에서 나오는 냄새 물질인 디아세틸이 인간이나 생쥐, 파리 세포의 DNA를 변화시키지 않고도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암과 알츠하이머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를 지난달 27일(현지시간) 'e라이프'에 발표했다.

e라이프는 생명과학 분야의 비상업적 동료평가 과학 학술지로, 2012년에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막스 플랑크 협회, 웰컴 트러스트에 의해 창간됐다.

레이 교수 팀은 "우리가 공기 중에서 접한 냄새 분자 중 일부가 피부나 코, 폐의 세포로 흡수되며, 혈류를 통해 뇌에도 흡수돼 유전자 발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어 "휘발성 냄새분자가 인체에 들어가 이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첫 보고로, 이번 연구를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새로운 탐구 분야가 열렸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작은 단백질이 과도하게 만들어져 뇌에 침착되면서 뇌 세포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것이 발병의 핵심 기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뇌 세포의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 염증반응, 산화적 손상 등도 뇌 세포 손상을 가져와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 치료법이 없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가 임상시험 중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HDAC(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억제제라는 약물이 유전자 발현 방식을 변화시키고 염증을 줄임으로써 암과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HDAC는 히스톤이 DNA를 더 단단히 감싸도록 하는 효소로, 일반적으로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다. 그런 만큼 HDAC가 억제되면 유전자가 더 쉽게 발현될 수 있다. HDAC 억제제는 혈액암 치료제로도 쓰인다. 디아세틸은 휘발성 냄새 분자의 일종으로, 버터 맛을 내며 맥주와 와인의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다.

연구진은 초파리와 생쥐, 사람에 다양한 용량의 디아세틸을 노출시켜 그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간 신경모세포종 세포를 디아세틸에 노출시키자 증식이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디아세틸이 HDAC 억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 암 치료에 쓰이는 약물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또한 헌팅턴병에 걸린 파리 모델에서 신경퇴행의 진행 속도도 늦어졌다.

레이 교수는 "냄새 물질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냄새 수용체가 없는 조직에서도 유전자의 발현이 직접적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디아세틸은 세포막을 통해 세포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 많은 양의 디아세틸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디아세틸을 고농도로 흡입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으며, 이럴 경우 폐에 상처가 생기는 팝콘 폐(popcorn lung·폐쇄성 세기관지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 교수는 "우리는 디아세틸을 통해 휘발성 냄새 분자의 인체 내 활동을 확인했지만 이 화합물이 질병 치료를 위한 완벽한 후보물질이 아닐 수 있다"면서 "우리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를 유도하는 다른 휘발성 물질도 알아내기 위해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중요한 발견은 미생물과 음식에서 방출되는 몇몇 휘발성 화합물이 진핵세포에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후성유전은 세대 간 유전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세포와 개체 간 차이에 따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연구 분야다. 세포 분화와 같은 다양한 생명현상이 후성유전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성유전학적 조절은 암 질환을 비롯한 대부분의 질병 발생에 있어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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