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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의 정치사기] 고려말 염흥방을 통해 본 조국의 신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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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 시기, 염흥방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곡성부원군 염제신의 아들로 명문대가의 촉망받는 인재였다.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학식이 뛰어나 문집인 '동정집'을 남기기도 했다. 벼슬길도 탄탄대로였다. 그는 여러 관직을 거쳐 정3품 밀직사 좌대언까지 순탄하게 승진했다.

잘 나가다가 꼭 탈이 나는 게 정치인이라 했던가. 염흥방 역시 자신의 능력과 집안의 후광을 갖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당시 간관인 이첨과 전백영이 권신인 이인임과 지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까지 이인임을 모해한 혐의로 유배를 가게 됐다. 염흥방은 집안의 도움으로 빠르게 풀려났지만 심경의 변화가 찾아왔다. 권력을 장악하고 정사를 마음대로 하던 간신을 탄핵한 사실만으로 처벌을 받는 현실이 너무 억울했다.

'청렴결백하고 강직하게 살아서 모하나'. 염흥방은 흑화했다. 해배(유배에서 풀려남)되자마자, 그는 임견미, 이인임 등과 어울리면서 뇌물 수뢰와 청탁, 권력형 부정축재 등을 자행했다. 썩은 권력의 냄새에 취한 염흥방은 경쟁하듯 재화를 축적했다.

더 이상 염흥방에게 이런 일들은 악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자라면 무릇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 이성적 판단력까지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이부형 이성림과 고향집에 갔다가 거리에서 간신들의 악행을 풍자하는 연극을 보았는데, 자신을 풍자하는 지도 모르고 웃기만 했다. 옆에 있던 이성림은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염흥방은 약에 중독된 듯 그저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염흥방의 말년은 어땠을까.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그의 권력은 천년만년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염흥방은 그의 노비들이 토지를 탈취했던 사건이 문제가 돼서 몰락했다. 당시 군부에 있던 최영, 이성계의 군사에 붙잡혔고 처형을 당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부산 민주 공원에서 창당선언문을 통해 "4월 10일 총선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 정권 심판뿐 아니라 복합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무능한 검찰 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맨 앞에서 싸우겠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의 발상으로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조 전 장관은 올해 총선을 본인이 유죄로 인정받은 부분에 대한 명예회복의 창구로 착각하는 것 같다. 광의의 범주로 판단할 때, 고려시기 염흥방이 염치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지 모르겠다. 더구나 조 전 장관에게 유죄로 인정된 건 자녀 입시 서류를 허위 작성하거나 위조한 혐의다. 기득권이 없는 사회적 약자 코스프레 할 상황은 아니다. 아마 극렬 지지층은 응원할지도 모른다. 다만 대다수 국민은 염흥방을 조롱했던 고려시대 민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 모순을 꿰뚫어 보고 있다.

만일 총선에서 당선되더라도 자녀 입시 비리 등에 대한 징역 선고가 무의미해질 수 있을까. 국회는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해 범죄자들이 도망치는 소도가 아니다. 설령 조국 신당이 성공해 국회에 입성한다해도 수개월 내에 있을 대법원 판결이 조 전 장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김세희의 정치사기] 고려말 염흥방을 통해 본 조국의 신당 창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가칭)조국 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신당의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선임됐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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