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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칼럼] 정치, `공존의 건축`에서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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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칼럼] 정치, `공존의 건축`에서 배우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 대학가는 신촌의 이화여대와 홍익대 캠퍼스와 그 주변이다. 이대는 2008년 중앙의 운동장 부지에 지하 캠퍼스 복합단지(ECC)를 준공했다. ECC에는 교실, 강연장, 헬스장, 영화관, 식당, 오피스, 주차장 등 대학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다 들어있다.

이 모든 공간들이 전혀 지하처럼 느껴지지 않고 주변 생태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은 특별한 건축철학 덕택이다. 중간에 열린 계곡을 파서 위로부터 햇빛이 들게 해, 어두운 지하가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했다.

이대앞 지하철역에서부터 이어진 좁은 길이 정문을 지나 ECC계곡 길로 이어진다. 애초에 계곡 위 좌우 두갈래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그라운드 레벨에서 나머지 대학건물들도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캠퍼스 앞 동네와 뒷산이 ECC로 인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설계자인 페로(D. Perrault)가 설명하듯이 ECC는 공동체가 '함께 사는 공간'을 도모한 의미가 큰 프로젝트였다. 도시 디자인은 '미래를 위한 과거', '과거를 위한 미래' 둘 다를 지향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지하 캠퍼스가 얼마나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매년 100마리가 넘는 새가 ECC 투명 유리창에 충돌하기도 할까.

이대의 캠퍼스가 지하 캠퍼스 건설로 그 자연친화적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완성했듯이 홍대에서도 지하 캠퍼스를 건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홍대 중앙 캠퍼스 설계 공모전에서 쟁쟁한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이 포진한 5팀이 경쟁했다. 피아노(Renzo Piano), 헤르조그(Herzog & de Meuron),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류에(니시자와 류에 & 세지마 가즈요) 등 세계 건축계의 별들을 제치고 네덜란드의 쿨하스(Rem Koolhaas)가 당선됐다.

다른 팀들은 캠퍼스 자체가 주변 지역에서 우뚝선 기념비적 건물을 설계했다. 거대한 독립건물 하나를 홍대 운동장 부지에 세우는걸 제안하는가 하면, 여러개의 매스 건물들을 들이고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쿨하스는 홍대 앞 마을, 그 뒷산과 전체적으로 조화되고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 개념으로 홍대 지하캠퍼스를 설계했다. 홍대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지는 네 갈래의 숲속 통로를 운동장에 설계하고 통로 사이사이엔 지하로 야외음악당, 공원, 휴식시설 등을 열린 공간으로 그렸다.


건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캠퍼스 앞 마을 및 뒷산과 공존하고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작업임을 웅변하고 있다. 건축물 자신이 기념비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흩뿌리고 자신 위로 공동체를 연결시키는 존재가 건축물이라는 철학이다.
이제 이대 ECC에 이어 홍대가 도심 캠퍼스 설계의 새로운 글로벌 기준을 수립하게 됐다. 우리는 어느새 자신의 이념을 관철시키고 남을 설득하려고만 하는 도그마 정치와 세력 싸움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다. 체제전쟁 속에서 밀리면 끝이라 한다. 자신과 자신의 세력의 기념비적 투쟁이 주변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정화해나갈 것이라 한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가는 한국사회에서 각종 사회권력은 끊임없이 반대자들을 색출해내며 자신의 존재의 당위성을 재창출해내고 있다. 친미·반미, 친일·반일, 반인권·인권, 재벌·서민, 원자력·탈원전, 경제성장·분배, 반조국·조국수호 프레임들 말이다.

인간의 이성은 반으로 나누기엔 너무 예리하고, 감성은 반으로 나누기엔 너무 복잡하다. 반이 다른 반을 죽이는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범죄행위일 뿐이다. 하이예크는 자신을 따르라고 시끄럽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결국 인간을 '예종에의 길'(The Road to Serfdom)로 이끈다고 말했다.

진정한 정치와 사회운동은 이런 도그마가 완성시켜 주는 게 아니다. 다양한 생각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흩뿌리고 자신 위로 다양성을 연결시키는 것이 진정한 정치와 사회운동임을 쿨하스의 건축철학에서라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7~8년 뒤에 홍대 지하캠퍼스가 완공될 때쯤이면 우리 정치와 사회도 그 모습처럼 변모해 있기를 2024년에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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