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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코큐텐 합성 `무모한 도전` 성공… "열정 100도 되는 순간 다른세상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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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 한국공학대학 융합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
회사 입사후 박사과정 밟으며 '제2의 비타민' 코큐텐과 만나
웰빙시대 건기식 확신… 수많은 고생끝 2003년 첫 100㎏ 생산
제약사·교수·정부기관 R&D 경험… "도전하는 환경 만들고파"
[오늘의 DT인] 코큐텐 합성 `무모한 도전` 성공… "열정 100도 되는 순간 다른세상 열려"
매사가 술술 풀리는 편은 아니었다. 늘 열심이었지만 행운이란 것은 그녀를 피해 다니는 듯했다.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석사를 한 후 제약사에 입사한 게 29살 때였다. 그해 캠퍼스 커플인 남편과 결혼해 '유부녀 신입사원'이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 5년 박사과정을 끝내 갈 즈음 30대 초반의 최수진 당시 대웅제약 대리는 자신이 어디로 걸어가야 할 지 어렴풋이 길이 보였다. 그때 그녀의 앞에 운명처럼 등장한 물질이 '제2의 비타민'으로 해외에서 뜨고 있던 항산화물질 '코큐텐(코엔자임Q10)'이었다.

최수진(56·사진) 한국공학대학 융합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앞으론 웰빙 시대란 확신이 들었다. 당시 국내 제약산업은 복제약을 만들어 파는 수준이었는데 그마저 가격 경쟁력에서 인도와 중국에 밀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약을 개발할 실력은 부족했다. 웰빙에 필요한 건강기능식품이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개 대리의 아이디어를 봐주는 이가 없었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회사를 설득해 연구를 시작하는 것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사들은 첨단 제조공법 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 회사는 물론 연구소 내에서조차 무모한 도전을 하겠다고 조르는 최 대리의 얘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대표이사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설득한 끝에 "한번 해보라"는 허락이 어렵게 떨어졌다. 2000년부터 최 대리 혼자 공부하던 코큐텐은 2001년 회사의 프로젝트가 됐다. 연구소에서 별 기대받지 못하는 신입급 후배 3명과 팀을 꾸렸다.

대웅제약이 '제2의 비타민'으로 불린 코큐텐을 세계 두번째로 생산하는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당시 글로벌에서 이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일본의 한 회사밖에 없었는데 그마저 발효공법을 써서 생산량이 적었다. 그 공장이 증설로 가동을 중단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어요. 코큐텐 합성은 어렵고 생소한 분야인데 10단계 이상의 긴 공정을 개발해 생산까지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길고도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며 눈물도 많이 흘렸죠."

속으로 '내가 수출하면 되잖아. 왜 못 만들게 해' 생각하며 공정을 설계하고 바꾸고 다듬었다. 4명으로 된 팀은 2명씩 조를 짜서 24시간 일했다. 마침내 8단계의 공정을 만들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를 다시 18단계로 바꾸는 연구를 새로 했다. 재료를 구하고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중간 과정에 들어가는 촉매를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고 실패하면 다시 될 때까지 했다.

최 교수는 "18단계를 거치는 정밀한 합성공정을 완성하고 이를 제조공정까지 연결하는 과정은 다시 하라면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2002년 출산 후에도 한달이 채 안돼 출근해 다시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해 말, 연구를 시작한 지 18개월 만에 마침내 공정이 완성됐다. 최 교수는 "아무도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팀장이나 연구소장도 아닌 일개 대리가 초년병 직원들과 팀을 짜서 1년 반만에 해내니 제약업계와 화학합성을 아는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1년은 제조현장에서 이를 만드는 또 다른 도전의 기간이었다. 그렇게 2003년 12월 노란 색깔의 코큐텐 100㎏이 처음 생산됐다.

최 교수는 "그때 노란 색의 코큐텐이 황금으로 보였다. 보물섬에서 황금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수출길이 열렸다.


코큐텐을 생산한 대웅제약의 원료의약품 관계사 대웅화학은 만년 적자에서 바로 국내 원료의약품 1등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2000~2500원 하던 주가는 1년 만에 4만원을 깨고 올라갔다.
'미운 오리 새끼' 최 대리는 바로 과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년 단위로 차장, 부장을 달았다. 차장이던 40살에는 국내 최연소 제약업계 연구소장이자 최초의 여자 연구소장이 됐다. 최 교수는 "당시 신문에 '3무 연구소장'이라고 크게 보도가 됐다"며 웃었다. 제약업계 최초로 남자·약사·박사(입사 시 기준)가 아닌 사람이 연구소장이 됐다는 것.

이후 국내에도 코큐텐이 팔릴 수 있게 식약처를 설득하느라 뛰어다닌 끝에 2005년 국내에서도 판매가 시작됐다. 코큐텐이란 물질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도 했다. 그 이후 코큐텐은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비타민C처럼 건강기능식품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요즘 코큐텐은 종합영양제, 화장품, 건강음료, 건강기능식품 등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한번 성공을 경험하니 계속 성공이 이어졌다. 우루사부터 항암제까지 '최수진표 기적'이 일어났다. 저절로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혼신을 다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열정적으로 매달린 결과였다.

2016년 대웅제약을 나와선 정부 기관에서 활약했다. 2016년부터 5년 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PD와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신산업MD를 역임하면서 국가 바이오 기술개발과 사업화 전략을 주도했다. 신산업MD로 있을 때는 바이오·헬스케어, 의료기기 등 R&D 전략을 이끌면서 우리나라가 한참 뒤져있는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이끌었다.

[오늘의 DT인] 코큐텐 합성 `무모한 도전` 성공… "열정 100도 되는 순간 다른세상 열려"
최 교수는 "정해진 길로 가지 않았다. 있는 길 대신 더 나은 길을 새로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특히 최 교수가 의대 교수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은 에비드넷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트업의 창업 원천이자 성장판이 돼 줬다.

2018년에는 OCI 부사장으로 발탁돼 바이오 신사업을 총괄하며 전통 제조기업인 OCI에 바이오 산업 DNA를 심었다. 2021년 바이오벤처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를 지낸 그는 지난해 한국공학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국내에서 바이오벤처부터 전통 제약사, 대기업, 대학교수, 정부기관까지 몸담고 R&D와 정책, 투자까지 경험한 사실상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 영입인재에 발탁돼 정치권에 발을 내디딘 그는 국회의원 총선 출마나 비례대표 선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 교수는 "세상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열정이 있는 사람이 바꾼다. 그들이 의지를 굽히지 않고 뜻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100명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것.

"물은 100도가 돼야지 99도에선 절대 끓지 않아요. 임계점을 넘기는 1도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97% 정도에서 멈춰요. 인내하며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 물이 끓고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죠. 피해 다니는 것처럼 보이던 행운도 따라와요. 더 많은 이들이 도전해서 임계점을 넘기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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