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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의 금융레이다] 성과가 욕심으로…여의도 살풍경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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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의 금융레이다] 성과가 욕심으로…여의도 살풍경 `2023`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어릴 적 가족들과 봤던 TV프로그램 '가족오락관'. 브라운관에서 의사, 군인, 선생님들이었던 연예인들이 게임을 하면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주니 참 재밌었다. 어린 나이에 아쉬웠는지 아직도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진행자 '허참' 아저씨가 사연을 보내라며 방송사 주소 읊었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상경해 와보니 여의도는 한강 가운데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 안에 비좁게 하늘로 뻗은 빌딩들을 보면서, 바쁘고 빡빡한 서울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했다. 그땐 섬에서 돌고 도는 소문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밤에도 꺼지지 않은 불빛들은 돈 때문이란 걸 몰랐다.

올해 몇몇 소식을 들었다. 부실 위기라는 말들이 많아 그런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선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많았다. 여의도 사람들의 구설에 따르면 한 증권사의 임원 A씨는 운용사에 차명 투자했다. 종교단체 자금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를 한 직원이 들고 도주했다. 이후로 종교단체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말들도 나왔다. 이빨이 몇 개밖에 안 남았다, 홍수가 났을 때 깡패들이 맨홀에 넣었다 등 믿지 못할 이야기들도 새나왔다.

최근 또 다른 증권사의 전 임원 B씨는 오피스텔 시행사에 PF대출을 내어주겠다며 수 십 억원 수수료를 요구했다. 동료 직원들에게는 또 다른 건축 사업에 자신이 소유한 투자 자문사를 선정해달라며 1억 원을 건넸다. 아침에 2800원이 찍힌 버스 단말기를 보고 물가를 실감해 깜짝 놀랐는데, 이 사람은 30억 원 넘는 돈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배짱도 좋다고 했다.

여의도에서 떠도는 말들은 이처럼 돈과 연결될 때가 많다. 돈을 위해, 성과나 실적을 내고 욕심이 선을 넘으면 덜미가 잡힌다. 물론 열심히 살아온 흔적들일 수 있다. '나는 돈을 빼돌려야지'라는 음모를 품고 첫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서다.


은행 신입사원 공채 최종면접장에서는 '창구에서 일하다 시재금이 2000원 남았을 때 어떻게 할까'라는 단골 질문을 한다. 이때 대부분 지원자들은 "끝까지 찾아내겠다"며 도덕성을 피력한다. "갖고 있다가 지점장이 오시면 드리겠다"고 답하면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사에 '개인 일탈'을 '융통성'이라며 자신 있게 답변한 사람을 책임질 여력은 없어서다.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은 여의도를 오가며 성장한다. 하지만 성과로 줄을 세우고 수천억이 눈앞에서 오가다 보니 일탈의 무게를 잊어버릴 수 있다.

부동산 PF 주선을 담당하는 한 친구는 최근 연말 모임에서 저축은행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맥없는 소리를 했다. 친구는 원래 지방 저축은행에 다녔다가 증권사로 자리를 옮겨 5년 만에 팀을 이끄는 위치에 올랐다. 지갑을 열어 술값을 계산할 때 친구들 사이에선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친구의 푸념을 들어야만 했다.

덕분에 연말 회식 분위기도 영 시원찮았다. 친구는 옆 증권사에서 부동산 PF 주선업을 하는 40대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울증이 심했다, 업무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등 다양한 추측이 구설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쉬지 않고 달려온 여의도 사람들이 잠시 멈춘 이유라고 생각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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