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대세가 된 `넛지`,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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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러 주창한 넛지 이론따라 각국 정부에 수많은 '넛지 부서' 생겨나
뉴욕대 디지털연구소장 레이프 웨이브,"넛지 이론 기반 행동경제학은 철학적 주장"
'넛지'가 사람들의 일상적 의사결정 변화시킨다는 근거 부족
실험 되풀이하면 똑같은 결과 얻지 못하는 '재현 위기'도 발생
'넛지(Nudge)'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인 이 단어는 2017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 대학교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에 의해 유명해졌다. 탈러는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과 공동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넛지(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탈러가 사용한 넛지의 뜻은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인간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비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가령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성 화장실 변기를 살펴보면 변기 가운데쯤 파리가 그려져 있다. 비용까지 써가며 왜 굳이 파리를 그려넣었을까? 이유는 변기를 사용하는 남성들이 소변을 자꾸 변기밖으로 실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변기 사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파리에 집중함으로써 '깨끗하게' 볼 일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드러운 개입인 '넛지'를 통해 인간의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탈러와 선스타인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뉴욕대학교의 디지털연구소장 레이프 웨더비는 뉴욕타임스(NY)의 11월 30일자 칼럼난에서 '불안정한 과학에 기반한 인간 행동 교정 방법에 대한 몇가지 아이디어'(A Few of the Ideas About How to Fix Human Behavior Rest on Some Pretty Shaky Science)라는 글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넛지 이론이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전했다.

웨더비에 따르면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넛지' 이론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에는 수백 개의 '넛지 부서'가 생겨났다. '넛지'를 활용해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장기 기증에 '옵트아웃(opt-out)'을 적용해 따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장기를 기증하게 유도하는 제도나, 자가용 운전자가 카풀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발송하는 정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넛지 정책'에는 문제가 있다는 게 웨더비의 설명이다.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종 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더 많이 발표된다는 점만으로는 '넛지'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의 근거로 다소 부족하다. '넛지'를 뒷받침하는 과학은 인간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존재이며, 정책과 시스템은 그런 비합리성의 영향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 수준이다.

'넛지' 이론은 공공 정책과 알고리즘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 행동경제학에서 비롯됐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1970년대에 유명한 실험을 통해 인간이 통계를 추론할 때 체계적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주식 시장 예측처럼 다양한 예측을 한다. 이때 적잖은 예측이 확실한 근거보다는 우연히 얻게 된 정보나 최근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어림짐작(휴리스틱·heuristics)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어떤 정보에 노출되는지, 어떤 말을 듣는지, 삶과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늘거나 줄어드는 심리학의 한 분야가 생겨났다. 상식적인 직관이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데이터의 도움으로 비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웨더비는 그러나 상식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꼭 과학적 근거가 견고하지 않은 심리학 연구에 의존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웨더비에 따르면 행동경제학은 현재 이른바 '재현 위기'에 처해 있다. 상당수의 사회과학 실험 결과가 다음 실험에서 재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넛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생각하거나 보는 것에 반응해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험하는 '점화(priming)' 연구의 일환이다.

이 분야의 기초가 되는 실험 가운데 하나로 대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빙고'나 '플로리다'처럼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접한 후에는 걸어 나오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실험이 있다. 그러나 이후 비슷한 실험에서는 똑같은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고, 이 분야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약화됐다. 우리가 노령과 느린 걸음을 연결 짓는 것은 당연하고, 노인에 대해 생각하면 때로 행동이 느려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과학자로서 어떠한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실험 내용만을 듣고도 어떤 실험이 재현 불가능한지를 잘 맞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각에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실은 나쁜 데이터로 포장된 상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카너먼 박사도 '재현 위기'와 관련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 재현 불가능한 연구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행동경제학을 대중화한 인기 있는 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난감한 부분이다. 행동경제학은 이제 의료 서비스 선택에서 일터의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이런 시도는 빈약한 과학적 근거 위에 서 있다. '재현 위기'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없다. 학술지들은 연구 중 결과가 조작될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가설을 사전 등록하도록 하는 등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불확실한 실험 결과나 이 연구들이 양적 사회과학이라는 분야에 갖는 파급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과학사학자이자 곧 출간될 점화 연구에 대한 책의 저자인 루스 레이스는 특히 인지과학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의 연구를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레이스 박사는 '재현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는 "바퀴 달린 기차에 선로가 이미 깔린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기술과 현대 데이터 과학은 행동경제학의 입지를 더욱 고착화시켰다.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는 알고리듬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의 이동과 구매, 선호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을 바탕으로 식료품에서부터 경찰이 누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동에 대한 개입이 이뤄진다. 데이터로 안전과 성공을 유도하고 더 나은 기본 옵션을 제공하는 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악의적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사용자의 인지적 편향을 악용하려는 이들이 모두 사용자의 이익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걸 우선으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행동경제학은 공공정책, 시장 조사, 디지털 인터페이스 설계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모호한 과학을 적용하는 문제에 일종의 유예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행동과학의 아이디어들은 우리의 제도와 일상에 이미 너무나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이제 와서 이 분야를 전면적으로 감사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정지되고 말 것이다. 경기장 입장이나 신용 등급을 결정하는 알고리듬을 학계의 엄격한 기준을 통해 검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동에도 검증되지 않은 과학적 결과에 대한 암묵적인 신뢰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사고, 행동은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 그에 따른 사회, 정치적 정책을 과학적으로 의심스럽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업화된 연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NY는 주장한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 이는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철학적인 주장이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치열한 논쟁의 주제가 돼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실질적이고 가치 있는 지식을 발굴하는 대신, 체중 감량이나 금연에 도움이 되는 '이상한 비책'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웨더비는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행동경제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예측 가능한 비합리적 결과보다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대세가 된 `넛지`,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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