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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대동강 인도교 개통식, 당시 무슨 일 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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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대동강 인도교 개통식, 당시 무슨 일 었었나
대규모 자금 투입 대동교, 평양 명물로 화제

씨름·소인극·시민운동회 등 사흘간 축하회

삼대부부·100세 이상 고령자 먼저 다리 건너

사이토총독 신변위협 소문에 철통경계 소란


대동강은 한반도 북부의 가장 중요한 강 중 하나다.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서울하면 한강이 떠오르듯, 평양하면 떠오르는 강이 바로 대동강이다. 부벽루(浮碧樓), 능라도(綾羅島), 모란봉(牡丹峯), 을밀대(乙密臺) 등으로 유명하다. 1905년 기차 통행을 위한 철교(鐵橋)가 부설됐고, 1923년 11월 30일 총길이 618m의 인도교(人道橋)인 대동교(大同橋)가 개통됐다. 100년 전 그 대동교 개통식을 찾아 한번 떠나가 보자.

'대동강 인도교 개통식에 성대한 축하식 거행'이란 제목의 1923년 11월 6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평양 대동강 인도교가 이번에 준공되면서 평안남도 물산진열관이 역시 낙성이 되므로 지난달 23일에 평남도청 내무부장실에서 여러 관계자가 모여서 성대한 축하식을 거행하고자 협의한 결과에 오는 28일부터 사흘 동안 축하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는데, 한편으로 씨름, 소인극(素人劇), 야구대회, 마라손 경주, 제등행렬, 시민운동회 등의 취미있는 유희를 할 터이요, 인도교 개통식에는 처음으로 사이토(齋藤) 총독 부부가 건너고 그 다음에는 조선인으로서 삼대(三代) 부부(夫婦)가 있는 다섯 집 가족이 건너게 한다는데…(후략)"

삼대 부부가 한 집에 있는 가정 다섯 집이 개통식에 참석한다는데, 그들의 복장에 관해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다. "오는 29일에 거행되는 평양 대동강 인도 철교 대동교 개통식에는 평양 시내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 삼대 부부가 구존(俱存)한 이를 순차로 건너게 한다 하며, 그들 삼대 부부의 복색은 각기 다르게 하며, 노인 부부는 고려 시대의 옷을 입고 아들 부부는 현대의 옷을 갖추게 한다는데, 그날 개통식에는 여러 가지 볼만한 것이 많이 있을 터이나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고려조 시대의 의관 문물을 구경하기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 하겠으며, 이번에 이 옷을 입을 노인은 평양부 관후리에 거주하는 여조(麗朝) 시중(侍中) 강지연(康之淵)의 후손 강창규(康昌奎·69)씨라더라."(1923년 11월 26일자 매일신보)

인도교 개통식에 100세 이상의 고령자를 건너게 한다는 재미난 기사도 눈에 띈다. "평양부에서 오는 30일 대동교 개통식 거행 시에 100세 이상의 고령자를 처음으로 건너 보낼 작정이라는 소문이 각처에 전파됨에, 사면에서 연고자가 다수 신청하는 중인바 12일에는 황해도 안악군 용문면 구화리 57번지 강우옥(姜禹玉)이라는 당년 118세 된(1806년 5월 1일 출생) 노파가 있다고 평양부에 신청한 일이 있다. (중략) 그 노인은 신체가 매우 건강하여 귀와 눈이 별로 어둡지 아니하고 자손도 매우 번성한다는 거짓말 같은 참 사실이 있다더라."(1923년 11월 15일자 매일신보)


드디어 1923년 11월 30일 대동교의 개통식이 열렸다. 1923년 11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오늘 개통식을 거행하는 평양 대동강의 철교인 대동교이다. 총 공비 230만원을 들여 재작년 5월에 시작하여 근일에 공사를 마쳤나니, 철재(鐵材) 들어간 것이 3천톤이요 다리의 기둥은 석재(石材)를 써서 전차나 자동차나 마음대로 다니며 길이 340간(間)이요 폭이 32척이며 가운데로 찻길이 나고 양편으로 사람 다니는 길이 있다."
총 공사비가 230만원이 들었다 한다. 요즘 돈으로는 얼마쯤이나 될까? 당시의 냉면값을 가지고 추산해 보면, 1923년 8월 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낙원관(樂園館)이란 상호의 제법 큰 식당의 개업 광고를 보면 그곳의 냉면 한 그릇 가격이 20전이었다. 1원이면 냉면 5그릇 값이니 지금으로 치면 당시 1원이 적어도 5만원 정도는 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대동교의 공사비 230만원은 지금 돈으로 최소한 1150억원 정도이니 매우 큰 공사일 것으로 추측된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대동강 인도교 개통식, 당시 무슨 일 었었나


계속해서 개통식 당일의 모습을 살펴본다. "지난 30일은 평양의 대동교를 처음으로 건너는 날이다. 사이토 총독의 부부도 다리를 건너 볼 작정으로 전날 오후 2시에 도착하였는데, 돌연 어떤 조선 청년 몇 명이 폭탄을 끼고 평양에 들어와 어떤 시간에 어떻게 한다는 말이 유행되어, 평양 각 경찰 관계 당국은 물론이요 헌병대에까지 혹은 무장 혹은 사복으로 30일 새벽부터 대동교 부근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경계하기를 시작하였다. 대동교 어구와 대동강 부근에는 다수한 군중이 또한 모여서 과연 무슨 구경거리가 생길 듯하게 한참 동안 소란하게 되었는데, 사이토 총독이 앞을 서고 여러 사람이 뒤를 이었으며 그 후에 경관과 군인들이 다수히 따라 건너 갔는데, 끝까지 아무 일은 없었다더라."(1923년 12월 2일자 동아일보)

이렇게 개통식을 거행한 후 대대적인 개통 축하회가 3일간 열리게 됐다. "29일 오전 10시 반부터 10여 대의 자동차를 장식하여 대(隊)를 지어 가지고 약 한 시간 동안으로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축하 선전지 수 만장을 뿌려서 시민으로 하여금 축하하는 기분을 재촉하고, 더욱 신시가에는 곳곳에 '아-치'를 세우고 각 상점에는 온갖 장식과 만국기와 전등으로써 일대 미관(美觀)을 드리게 하고, 전차에는 전차 투표를 하게 한 결과 승객이 몇 배는 늘어서 전차마다 만원이 되었고, 공회당에서는 시내 각 보통학교와 소학교의 연합음악회가 있으며 연광정(練光亭)에는 기생의 연주회가 있고, 그 외 온갖 가무 연극 등과 정구와 운동회 등을 이곳 저곳에서 개최하여 공전의 대성황을 일으키는 중이라더라."(1923년 12월 1일자 매일신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이렇듯 대동강에 인도교가 개통이 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하나 생기게 되었다. 바로 대동강 인도교가 자살터가 될까 봐 염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923년 11월 30일자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3년 동안을 두고 가설하던 대동강 인도교는 어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 다닐 적보다 대단히 편리하기는 하겠지마는, 하나 걱정거리가 없지 않다. 개통식 할 때부터 이런 말을 하기가 상서롭지 못하지마는 서러운 사람들의 자살터가 될까 봐 제일 염려이다."

다리(橋)란 물이나 어떤 공간 위로 사람이나 차량이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을 말한다. 즉 소통을 위한 구조물이다. 루신(魯迅)은 '도진겁파형제재, 상봉일소민은구(渡盡劫波兄弟在, 相逢一笑泯恩仇)'라는 시를 남겼다. '거센 고난을 넘어 살아남은 형제, 웃음 속에 만나 은혜와 원한을 날려보낸다'는 뜻이다. 임진강(臨津江) 쯤에도 인도교가 생겨 그 개통식의 기쁜 소식이 전해올 날은 언제일까. 과연 그날이 올지는 아직까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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