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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시간은 금" 긴 영화도 짧고 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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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분짜리 영화, 23개로 나눠 '좋아요' 5500만
유튜브 사용자, 1044억분 소비… 카카오톡의 3배
성인 10명 중 7명 '빨리감기'…"時성비 중요해"
# 한 소년이 냉장고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자 소음을 없애려고 냉장고를 분해했다. 이를 눈치챈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서 "너에게 매우 실망했다. 동전 한 푼까지 다 갚도록 해"라며 소년을 혼내자 처음에는 이를 놀리던 쌍둥이 동생이 다가와 우는 소년을 안으면서 위로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틱톡'에서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의 프리퀄인 '영 셸든'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47초 가량의 짧은 영상은 조회수 12만7000회를 기록했다. 2017년부터 방영 중인 미국 CBS의 때 지난 드라마가 SNS에서 다시 부활한 셈이다.

때 지난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전용 플랫폼이 아닌 인스타그램 '릴스'나 X(옛 트위터), 틱톡, 유튜브 '숏츠' 등 '숏폼'(짧은 영상)으로 감상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전체 TV 에피소드나 시리즈, 영화를 분할해 시청하기도 하고 일부 이용자는 SNS를 통해 TV 프로그램을 몇 시간씩 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트렌드를 겨냥해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들은 숏폼 형식에 맞춰 작품을 내보내며 팬들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 영화 쪼개서 SNS에 팬덤 형성…"OTT 유통 구조도 변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발간한 '글로벌 OTT 동향분석'을 통해 SNS를 통한 영화와 드라마 시청 트렌드를 짚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0월 3일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시간 47분 분량의 2004년 개봉작인 '퀸카로 살아남는 법' 영화 전체를 23개 부분으로 나눠 공유하기 위한 틱톡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을 운영한 후 현재 팔로우 수는 438만5000명에 달하며 5500만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신작 홍보에도 틱톡이 유용한 플랫폼으로 활용된다. 지난 8월 NBC유니버셜 산하 피콕은 오리지널 코미디 시리즈물 '킬링 잇' 시즌2 개봉을 앞두고 시즌1 전편을 틱톡에서 5개 영상으로 쪼개 올렸다. 파라마운트플러스 또한 지난 5월 오리지널 시리즈물 '스타트랙: 스트레인지 뉴월드'의 첫 번째 시즌 전체 에피소드를 유튜브에 무료로 업로드했다.

보고서는 "TV 시청이나 영화관을 찾기보다 모바일 스크린과 SNS를 통한 콘텐츠 시청을 즐기는 트렌드가 M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다양한 연령대의 성인 시청자들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OTT 사업자들의 콘텐츠 유통 전략과 UX(이용자경험) 전략도 중장기적으로는 시청 변화에 맞춰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흥미 위주 숏폼, 핵심 콘텐츠 소비 행태로 자리잡아

실제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흥미 위주의 숏폼이 핵심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 성인 일평균 영상 시청시간에서 디지털 동영상 시청 시간이 지상파, 케이블 등 시청 시간을 처음 추월하기도 했다.

숏폼 효과를 누린 대표 플랫폼으로는 유튜브가 꼽힌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이하 와이즈앱)가 유튜브 앱 이용 시간을 분석한 결과, 2020년 671억분이던 유튜브 앱 사용 시간은 지난 10월 1044억분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카카오톡과 비교하면 3배, 네이버와 견주면 약 5배 많은 수치다. 특히 숏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의 지난 3년간 이용 시간이 크게 늘었다.


숏폼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소비 행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중장년층들도 드라마를 축약본으로 감상하는 등 전 연령층에 걸쳐 미디어 소비 호흡이 짧아지는 추세다. 바쁜 현대인들이 한정된 자원인 아끼려면서 재미도 추구하려는 욕구로, 시간 대비 성능을 중요시하는 '시(時)성비'가 새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 영상 소비도 '시성비'가 대세…빨리감기 시청으로 효율 찾는 콘텐츠 소비자들

효율적인 영상 소비를 위해 빨리 감기로 빠르게 영상을 시청하는 이들도 늘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10월 최근 3개월 내 유튜브, OTT 시청 경험이 있는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10명 중 7명(69.9%)이 평소 유튜브, OTT 영상 콘텐츠를 빨리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을 빨리 알고 싶거나 다른 할 일이 많은데 봐야 할 영상이 많을 때 빨리 감기를 하고, 빠른 시간 내 쉽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2시간, 길면 3시간가량 극장 안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있다. 숏폼 콘텐츠에 익숙하고 OTT 관람 시 지루한 부분은 원하는 속도로 배속 시청이나 건너뛰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시간을 최대한 덜 쓰면서 관심 가는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추세도 영상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는 배경이다. 실제 새 콘텐츠를 접할 때 실패를 줄이고 싶은 태도가 강하고 사전 정보를 검색하는 추세도 늘었다.

일본의 한 잡지 편집장 출신 이나다 도요시는 저서인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빨리 감기는 시대적 필연"이라며 "빨리 감기 시청이나 건너뛰기 습관은 '가급적 적은 자원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절대적 정의를 갖출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평했다.

◇ 숏폼 인기에 롱폼 콘텐츠 위기…"인식 체계도 영향"

일각에서는 숏폼 콘텐츠의 인기로 콘텐츠를 가볍게 소비하고 긴 호흡의 콘텐츠 시청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 전문가들은 숏폼 콘텐츠 소비 행태가 갈수록 확산하면 롱폼 콘텐츠 소비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영상 산업의 기초체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미디어 이용 행태 변화로 인한 숏폼 위주의 콘텐츠 소비는 창작 시장 활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미디어가 인간의 인식체계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갈수록 책이나 긴 호흡의 영화를 보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김나인기자 silkni@dt.co.kr

[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시간은 금" 긴 영화도 짧고 굵게
'퀸카로 살아남는 법' 틱톡 계정 영상 갈무리.

[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시간은 금" 긴 영화도 짧고 굵게
영 셸든 틱톡 계정 갈무리.

[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시간은 금" 긴 영화도 짧고 굵게
영 셸든 포스터. CBS 홈페이지 갈무리

[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시간은 금" 긴 영화도 짧고 굵게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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