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정구학 칼럼] 박태준 회장이 무덤에서 회초리를 든 까닭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정구학 칼럼] 박태준 회장이 무덤에서 회초리를 든 까닭
지난 2007년 3월 서울 국립극장 근처 옛 남산순환도로 둘레길. 산책 중인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을 필자가 함께 걸으며 인터뷰했다. 포스코 창업자로서 '한국의 철강왕'으로 불리던 고인이 2011년말 작고하기 4년 전이다. 언론과 단독인터뷰를 한 건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포스코 출입기자라고 했나. 포스코가 잘못한 게 있으면 채찍질을 해줘야 해. 잘못한 게 있으면 (언론이) 과감하게 지적해야 포스코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거야." 고인은 당시 경제상황을 걱정하다가 인터뷰 말미에 필자의 손을 꼭잡고 그렇게 당부했다.

박 회장이 '포스코를 잘 봐주게'라고 말할 줄 알았던 필자는 놀랐다. 포스코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따끔하게 지적하라니. 박 회장의 목소리가 16년이 지나서도 생생한 것은 현재 포스코가 채찍질을 당할 만한 상황이어서다. 내년 3월까지 임기(3년)를 두 번 채우는 최정우 회장부터 시끄럽다. 박태준 전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회초리감이다. 최 회장은 작년 9월 태풍 힌남노가 포항제철소를 물바다로 만들었을 때 현장에 가지 않고 주말 골프를 쳤다,

1970년대 "포항제철소를 못 지으면 모두 영일만으로 우향우해서 빠져죽자"며 독려했던 박 회장이 봤다면 기가 찰 일이다. '굿 샷'을 외친 최 회장은 태풍피해 복구현장에서 땀범벅이가 됐던 임직원에게 최소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야 했다, 최 회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인 해외사절단에 한번도 끼지 못했다.

일련의 악재에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지어진 국민기업 포스코 전현직 구성원의 자존심은 뭉개졌다. 지난해 포스코 창립 원로 6명은 "국민기업 정체성을 훼손하는 최정우 회장은 자성하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최 회장의 지시로 홍보부서가 '포스코에 씌워진 국민기업이란 멍에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자료를 뿌리자 들고 일어난 것.

포스코 창립멤버는 일제시대 흘렸던 선열들의 ''피눈물'로, 산업의 쌀인 '쇳물' 을 생산하는 민족기업을 일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박태준 회장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황무지에 일관제철소(쇳물에서 철강제품까지 만드는)를 세운 한국 철강산업사의 주역이다.

이들은 무덤에 있는 고 박태준 회장을 대신해 회초리를 들었다. 포스코가 민영화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정치권에 종속돼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다. POSCO의 앞글자 'PO'가 Pohang(포항)이 아닌 Political(정치적)으로 변질되가는 모습을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분노가 폭발했다.

정치성향의 최정우 회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고향, 대학 동문이란 후광을 업고 CEO에 올랐다. 자원개발과 2차 전지 개발 같은 미래성장 동력 발굴에 힘썼던 전임 회장들과 비교하면 새 비젼을 제시하지 못했다.

포스코나 KT 같은 민영화된 공기업의 수장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원인은 허약한 기업지배구조에 있다. 주인없는 민영화의 약점이다. 주주가 분산되다보니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뒤에서 조종하기 쉽다. 외국인 주주는 지분율은 높아도 배당 외엔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포스코와 KT는 민영화(民營化: 민간의 경영)된 게 아니다. 민유화(民有化:정부 지분만 민간으로 넘어감)됐다라는 해석이 더 맞다,

설사 정부가 CEO 선임에 입김을 불어넣더라도 이사회나 CEO 후보추천위원회가 당당히 맞설 수도 있다. 몇해 전에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 전직 차관을 퇴짜시킨 적도 있다. 외부 낙하산인사라도 해도 부총리급(김만재 전 회장)이 맡았었는데 장관도 아닌 차관급이 내려오려고 하자 벌어졌던 일이다. 이렇듯 포스코는 자존심으로 뭉쳐 있었다.

요즘 포스코 후임 회장 선임을 놓고 온갖 소문이 나돈다. 전현직 포스코 임원은 물론 외부 정치권·행정관료 출신의 이름이 자천타천으로 오르내린다. 어림잡아 10명을 넘는다.

이들 후보 중에서 정치색(Political)을 빼고, 자존심(Pride)과 열정(Passion) 전문성(Professional)을 갖춘 CEO를 뽑아야 한다. 무덤에서 고 박태준 회장으로부터 회초리를 안맞으려면 말이다. 이사 겸 편집국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