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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민국에 새겨진 분열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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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안민정책포럼 청년분과위원
[기고] 대한민국에 새겨진 분열의 상처
종교, 물리학에서 거론되는 '만물의 순환'을 놓고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이 있다. 디즈니 작품 '라이온킹'의 대사에서 아버지 무파사가 아들 심바에게 "우리는 영양을 먹지만 우리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풀이 자라면 영양들은 그 풀을 먹고 산다"라고 말한다. 삶의 순환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삶의 순환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삶의 순환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가을에는 낙엽이 지듯이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자라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이유는 '이별' 때문일 것이다. 이별의 유형 역시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오감으로 인지하고 있는 내 존재와 내가 지각하는 세상으로부터의 이별이 있다. 그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슬프고 두렵게 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일 것이다.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현대사는 수많은 이별들로 점철되어 왔다. 식민 지배, 분단, 전쟁 등과 같이 커다란 사건 속에서 우리를 가장 뼈아프게 했던 것은 수많은 폭력들과 그로부터 오는 이별들이었다. 식민 지배 속 강제 동원, 강제 이주, 투옥, 분단, 전쟁에 따른 징집과 전사, 학살, 납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수많은 이별들을 경험해야 했다.

자식과의 이별, 부모와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은 모두 생을 다하여 이별을 당하는 주체가 자신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이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다고 한다. 한반도는 지역 전체가 100년 동안 그런 이별들 속에서 살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와 미래를 정비해야하는 현재,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모습은 과거의 경험들을 모두 잊은 듯하다. 생존을 위한 다툼일까,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갈라놓고, 남과 싸워 이겼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을 느끼는 듯 하다. 서로를 소멸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이산가족들, 국군포로들, 북한이탈주민들, 수많은 이별을 경험해야 했던 사람들이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채 우리들 곁을 떠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살, 고독사 등과 같은 형태로 우리 곁을 떠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정파, 세대, 젠더, 학벌, 소득, 지위, 이념, 이득, 다름을 기준으로 상대를 혐오하고 우월감을 느낀다. 이는 서로의 현재와 미래를 한층 악화시킨다. 세계 역시 수많은 죽음을 통해 수많은 이별을 발생시키고 자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름을 문신으로 남기고 있다.

역사는 반드시 메시지를 보내왔고 지금도 보내오고 있다. 무엇이 정말 멋지고 세련된 것인지, 그 방식이 배척과 혐오인지 질문을 던져보자. 인격을 간과한 이득, 이론과 패권의 맥락을 찾기 전에 너무도 당연하여 놓치고 있는 본질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공동체 개개인의 삶의 본질과 이유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시기이다. 모두의 삶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를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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