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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이쯤에서 LG家 상속소송 접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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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이쯤에서 LG家 상속소송 접는 게 순리다
과거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을 공식석상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하지만 말을 붙여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빠른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대화를 주고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마치 LG그룹의 심볼마크를 옮겨놓은 듯한 선하게 웃는 인상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L과 G를 둥근 원 속에 형상화해 인간이 그룹 경영의 중심에 있음을 상징한 그 심볼마크에는 '인화'(人和)를 중시한 LG그룹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인화'라는 경영철학과 함께 유교적인 가풍에 따른 장자상속의 원칙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뚝심으로 4대째 이어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뿌리 깊은 기업의 경영 철학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LG그룹이 보여준 것이다. 최근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운데 G의 투명성을 지켜주는 LG그룹의 원칙이다. 구광모 회장을 현장에서 만나진 못했지만, 과거 총수에 오르기 전 ㈜LG 등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구 회장은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겸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뚝심 있는 선대의 가풍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했다고 했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인화'의 연장선상으로 '고객'을 경영철학의 전면에 내세웠고, 선제적인 사업 재편 속에서도 절대 구성원을 자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랬던 '인화'의 LG그룹에 최근 '불화'(不和)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구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씨가 두 딸과 함께 아들인 구광모 LG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첫 변론기일이 지난 5일 열렸다. 원고 측은 선대회장의 경영권 지분의 처분에 대한 유언장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구 회장이 자신들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여사 등의 일부 주장은 첫 공판기일에서부터 흔들렸다. 원고 측은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은 2022년에야 알게 됐다"며 소송의 이유를 밝힌 바 있는데, 당시 증인으로 나온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은 "유언장이 있다고 한 적은 없고, 구 선대회장의 유지가 담긴 문서가 있다고 말한 뒤 보여드렸다"고 증언했다. 하 사장은 구 선대회장 별세 즈음 ㈜LG의 재무관리팀장으로 상속 분할 협의를 맡았던 인물이다.

하 부문장의 증언에 따르면 2017년 4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구 선대회장이 수술 하루 이틀 전에 병실로 불러 선대회장이 가진 경영 재산을 모두 구광모 회장에게 승계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이후 관련 내용을 정리한 메모에 선대회장의 자필 서명까지 받았다. 하 사장은 "(선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구광모 회장의 지분이 부족하니 앞으로 구 회장이 많은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고도 진술했다.


구 회장은 그러나 선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지분을 모두 상속 받았음에도, 딸들이 주식 한 주를 못 받는 게 서운하다는 김 여사의 말을 듣고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에 필요한 15%를 제외한 지분 2.52%를 두 여동생이 상속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고측은 이 밖에도 선대회장이 보유하고 있단 미술품을 누구에게 나눠줄 지를 정해 김 여사가 자필로 적은 미술품 감정 평가서 등 상속 과정에 있었던 여러 증거들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기망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재산 분할 논의가 오간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아직 따져봐야 할 것이 많은 만큼 이번 상속에 대한 논란의 진위여부를 따지기는 시기상조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재판이 열린 것 만으로도 '인화'의 LG라는 경영가치가 상당히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 구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LG의 구씨 가문은 4대 째 장자 혈통을 이어가는 가운데에도 지금까지 누구도 독단으로 사업을 휘두르거나 방만 경영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고 겸손했다. 이는 총수가 개인의 '소유'로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대표해, 그리고 수만명에 이르는 임직원들을 대신해,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을 위해 대신해서 잠시 맡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다. 생전에 그룹의 경영권을 내려놓고 버섯농사를 하며 검소하게 생을 마친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생의 궤적만 봐도,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구씨 집안의 가풍을 알 수 있다.

구본무 선대회장 역시 평소에는 겸손하지만, 원칙과 소신에 대해서는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의 정경유착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친목 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사이다 발언'을 했던 것이 그 예다. 구 선대회장은 생전에 평소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자주 드러냈다고 한다. 격식을 싫어했으면서도 회사의 것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가족들이 있을 경우 엄하게 질책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부인과 딸이지만, 만약 이 재판을 직접 봤다면 사랑했던 만큼의 '불호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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