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백성들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다. 왕에게 있어 백성은 반드시 마음을 얻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만큼 조정에서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백성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했다.
1430년 3월 5일, 세종은 파격적인 명을 내린다.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전·현직 고위 관리부터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의사를 묻는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호조가 전답 1결마다 조 10두를 거둘 것을 건의한 데 따른 조치였다. 당초 세종이 새로운 전세로 내놓았던 답헙손실법(농산물의 수확량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법)이 지방 수령들의 비위로 폐해가 잇따라서다,
결과는 같은 해 8월 10일, 6개월 만에 나왔다. 여론조사 대상 인원은 총 17만2806명,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가 69만 2477명, 인구 4분의 1이 참여한 대규모 여론조사였다.
관리들 사이에선 평가가 갈렸다. 품관의 높낮이와 재직여부는 상관이 없었다. 3품 이하 전·현직 관리는 찬성 702명(현직 259명, 전직 443명), 반대 510명(현직 393명, 전직 117명)으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관리들은 지방 수령이 저지르는 불법과 편법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반대하는 측은 토지의 질이 지역별로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토지의 비옥도를 파악한 뒤, 기존의 세법과 병행해서 시행하라는 중재안도 나왔다. 전 동지총제 박초는 "척박한 산전은 경작자의 신고를 받은 뒤, 답헙손실법과 공법을 겸행토록 하소서"라고 했다.
3품 이상의 고위 및 3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 관리들의 찬반 분포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공법의 장단점'을 거론하는 의견을 보면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조판서 권진과 형조판서 김자지(金自知) 등은 토지의 비옥도 차이, 기후, 홍수와 가뭄의 피해 등 여러 변수를 이유로 들었다.
지역별로는 극명하게 갈렸다. 경기도(찬성 1만7106명, 반대 241명)와 전라도(찬성 2만9547명 반대 269명), 경상도(찬성 3만6317명 반대 393명), 개성 유후사(찬성 1123명 반대 71명)는 90%이상이 찬성했다. 대부분이 곡창지대로 분류될 만큼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이었다.
반면 척박한 지역이 많은 충청도(찬성 6995명 반대 1만4039명)와 황해도(찬성 4471명 반대 1만5618명)는 반대가 70%이상이었다. 논밭이 부족한 강원도(찬성 944명, 반대 6898명)는 87.4%가 반대했다. 특히 국경지대이자 험지인 평안도(찬성 1332명, 반대 2만8510명)와 함길도(찬성 78명, 반대 7401명)는 반대가 각각 95.5%, 99%에 육박했다.
종합하면 여론조사에 응답한 관리·백성의 57.1%가 찬성표를, 42.9%가 반대표를 던졌다. 과반이상이 찬성한 셈이다. 현대 추세라면 '전답 1결 당 조 10두 징수'를 골자로 한 공법안은 통과돼야 마땅했다. 그러나 세종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장시간 관료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반대 의견이 많으니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세종은 3분의 2 다수결 원칙도 내세웠다. 이런 여론 과정을 숱하게 거쳐 논의된 공법은 조선 말까지 세법의 기본으로 지켜졌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도 밥상 머리 민심을 미리 살펴보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같은 시기에 실시된 조사지만 결과의 편차는 컸다. 여론조사 업체에 따라 정당의 우열 경향도 달랐다. 예를 들면 A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우세, B 여론조사는 민주당 우세인 식이다. 포인트 격차도 5~20% 가량 날 정도로 컸다. 여야 지도부는 이런 여론조사와 본인이 들은 추석 민심을 바탕으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한 민심은 '이재명 대표를 심판하라', 민주당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하라'였다.
도대체 국민들에게 와닿기나 한 여론조사 결과나 시각일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진 이 시기에, 국민들이 원하는 주제는 따로 있을 지 모른다. 서민의 어려운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접고 실제 민심을 귀 기울이면서 대안을 내놓으면 어떨지 제안해본다.
![[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시대 여론조사, 지금과 달랐다](//contents.dt.co.kr/images/202310/2023100502109958038005[1].jpg "[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시대 여론조사, 지금과 달랐다")
![[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시대 여론조사, 지금과 달랐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310/2023100502109958038005[1].jpg "[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시대 여론조사, 지금과 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