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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데이터 빠진 `무늬만 ESG` 발 못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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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인텔리전스' 핵심경쟁력 부상… 글로벌 빅테크 주도
애플·MS의 공급망서 생존못해… 국내기업 십수년 뒤처져
[기획] 데이터 빠진 `무늬만 ESG` 발 못 붙인다
사진=연합뉴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경제계에 던져졌다. 그 결과에 따라 기업 순위가 바뀌고 흐름을 놓치는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사라진다.

거대 금융자본이 룰을 만들고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하는 ESG의 핵심은 데이터와 IT(정보기술)다. '무늬만 ESG'에 그치지 않고 제품부터 사업장, 운송, 협력사까지 상세한 탄소배출 명세서를 요구하는 각종 규제와 제도, 고객사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투명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다. 데이터와 IT에 ESG 경영철학을 결합한 'ESG 인텔리전스'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전쟁의 최선봉에 선 곳은 돈과 기술을 다 가진 글로벌 빅테크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애플을 비롯,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ESG 경쟁력은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순이다. 최근 자사 최초 탄소제로 제품 '애플워치9'을 내놓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발표행사에서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꿨다. 기후변화는 애플에 최우선 순위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에서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제품 공급이 느려지더라도 비행기보다 배로 더 많은 제품을 실어나르고 케이스 소재부터 IT 제품의 심장인 반도체까지 모든 변화의 지향점은 ESG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반도체부터 이차전지, IT부품, 자동차 전장, 철강까지 국내 핵심 산업 전체에 파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애플이 제조 협력사에 탄소중립을 요구하면서 300개 넘는 글로벌 협력사들이 100% 청정에너지 사용을 약속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삼성전기, LG이노텍, 포스코 등이 애플 공급망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2030 탄소중립을 약속했고, 중소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ESG 도미노 줄세우기'가 본격화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만 TSMC와 반도체 성능뿐 아니라 ESG에서도 미래를 건 승부를 벌이고 있다. 먹이사슬의 최상단에서 시작된 ESG 전쟁은 빠르게 아랫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방수인 SK C&C 디지털ESG그룹장은 "국내에서 2025년 ESG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지만 그에 앞서 EU(유럽연합) 탄소국경제도, 배터리법, 공급망실사법 등 글로벌 규제가 먼저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여기에 애플 같은 대형 고객사들이 탄소중립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ESG 경영은 기업 생존의 키워드가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경영기조를 ESG로 바꾼 글로벌 기업에 비해 국내 경제계가 최소 수년 뒤졌다는 점이다. 특히 자금과 인력, 기술력이 딸리는 중견·중소기업들은 시작조차 못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기업들은 협력사 진용을 ESG 흐름에 맞춰 정비해야 한다. 국내에서 안 되면 해외에서라도 공급선을 확보해야 한다. 자칫 대기업은 비용과 리스크가 커지고 중견·중소기업은 시장을 잃는다.
고서곤 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부회장은 "대기업은 그나마 해외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이 문제다. 이들 기업이 디지털 ESG에 준비되지 않으면 국내 산업생태계와 공급망 전반이 흔들릴 것"이라면서 "단일 기업이 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전 산업을 아우르는 디지털 ESG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고객사를 둔 기업 중에는 제조현장 곳곳에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설치해 탄소 배출 데이터를 관리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곳들이 있다. 해외 기업의 ESG 공급망 기준에 맞춰 수년간 먹거리를 확보한 기업들도 등장한다. 유럽 기업들은 운송 과정의 탄소배출까지 고려해 공급사를 고른다. 배나 비행기로 상품을 보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불리하다. 내부뿐 아니라 원자재, 부품, 배송, 유통까지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현미경으로 보듯 관리하면서 최대한 쥐어짜야 하는 이유다.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과거에 권장사항이던 ESG 경영이 '경성 규범'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밸류체인 전반에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만큼 주먹구구식 운영관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ESG 경영에 디지털화와 데이터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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