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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는 해파리·말미잘은 뭘로 학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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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는 해파리·말미잘은 뭘로 학습할까
손톱만한 크기의 카리브해 상자해파리는 24개의 눈을 사용해 연약한 몸을 손상시킬 수 있는 맹그로브 뿌리를 발견하고 피한다. 킬대학교 제공

해파리는 무엇을 이용해서 외부 환경을 파악하고 위험을 피할까. 뇌가 없는 해파리가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해파리나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단순한 다세포 동물로, 뇌나 뇌 기능을 하는 신경세포 덩어리가 없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카리브해 상자 해파리(Tripedalia cystophora)가 중추 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을 발견하고 피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22일(현지시간) 실렸다.

해파리가 무언가를 보고 부딪히는 것 같은 사건들 사이에 정신적 연결을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최초의 보고다.

독일 킬대학교의 신경 심리학자 얀 비엘레키(Jan Bielecki)는 "학습에는 매우 복잡한 신경계가 필요하지 않고 신경세포의 필수적인 부분이나 매우 제한된 회로로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동물의 학습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추적하는 데 힌트를 줄 수 있다.

마치 종처럼 생긴 카리브해 상자해파리의 몸에는 4개의 손잡이 모양 촉수포(rhopalia)가 달려 있다. 각 촉수포에는 6개의 눈과 약 1000개의 뉴런이 있다. 해파리는 시각을 이용해 열대 석호의 맹그로브 뿌리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작은 갑각류 먹이를 사냥한다.

뿌리 사이를 헤쳐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카리브해 상자해파리는 주변 물에 비해 뿌리가 얼마나 어둡게 보이는지, 즉 대비를 기준으로 뿌리와의 거리를 판단한다. 맑은 바닷물에서는 멀리 있는 뿌리가 희미하게 보이거나 대비가 낮아진다. 그러나 흐린 물에서는 가까운 뿌리가 주변 환경과 섞여 있을 수 있다.

물은 조류 등의 요인으로 인해 빠르게 탁해질 수 있다. 비엘레키 박사 연구팀은 카리브해 상자해파리가 처음에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대비 물체가 실제로는 가까이 있다는 것을 학습할 수 있는지 관찰했다.

연구팀은 회색과 흰색 줄무늬가 번갈아 나타나는 저대비 환경의 원형 수조에 12마리의 해파리를 넣은 후 약 7분 동안 카메라로 해파리의 행동을 촬영했다. 처음에는 해파리들이 회색 줄무늬를 멀리 떨어진 뿌리로 해석하고 수조 벽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조 벽과 부딪힌 해파리는 회색 줄무늬를 혼탁한 물속의 가까운 뿌리처럼 인식하고, 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해파리와 수조 벽과의 평균 거리는 처음 몇 분 동안 약 2.5㎝에서 마지막 몇 분 동안은 약 3.6㎝로 멀어졌다. 벽에 부딪히는 횟수도 평균 분당 1.8회에서 분당 0.78회로 감소했다.
해파리 신경계를 연구해 왔지만 이번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은 아칸소대학의 진화 생물학자 나가야스 나카니시는 "정말 놀랍다"면서 "해파리가 실제로 학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뇌 없는 해파리·말미잘은 뭘로 학습할까
카리브해 상자해파리의 네 개의 촉수포(동그라미)는 각각 6개의 눈과 약 1000개의 뉴런을 갖고 있어 시각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한다. 킬대학교 제공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 비욘 브렘스는 실험 대상 해파리의 수가 적다는 점과 해파리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이 결과가 사실이라면 정말 멋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실험에서 비엘레키와 동료들은 해파리에서 촉수포를 잘라내 눈을 가진 신경다발을 스크린 앞에 놓은 후, 화면에 저대비의 밝은 회색 막대를 보여주면서 약한 전기 자극을 줘서 무언가에 부딪히는 느낌을 흉내 냈다. 촉수포는 처음에는 무시했던 저대비 막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파리가 장애물에서 도망칠 때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신호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대비 장애물이 실제로는 피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촉수포만으로 학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촉수포가 카리브해 상자해파리의 학습 센터라는 것을 암시한다.

시드니 맥쿼리대학의 행동생물학자 켄 쳉은 "해파리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한 걸음 더 깊이 이해하는 멋진 연구결과"라고 밝혔다.

한편 스위스 프리부르대학의 보톤-아미오트 연구팀은 말미잘에도 비슷한 학습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말미잘은 해파리와 마찬가지로 니다리아목에 속하는 동물이다. 연구팀은 "매우 다른 두 종의 말미잘이 모두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학습능력이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이들의 공통 조상도 학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나카니시 박사는 "학습은 신경계의 진화 과정에서 실제로 여러 번 진화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해파리나 다른 동물의 학습 뒤에 숨어 있는 세포 및 화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습하는 메커니즘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면 이는 공통 조상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면 아마도 매우 다른 학습 메커니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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