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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前 생소한 초전도체로 창업… "기술보다 어려운게 기술로 돈버는 일"[오늘의 DT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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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정부 연구개발사업 계기 국내 유일한 초전도 기업 도전
변전소 1km 구간 세계 첫 초전도 케이블시스템 상용화 성공도
최근 빅테크 몰리는 핵융합에 주목… "상용화땐 초전도 큰 시장"
20년前 생소한 초전도체로 창업… "기술보다 어려운게 기술로 돈버는 일"[오늘의 DT인]
문승현 서남 대표



국내 초전도분야 산증인… 문승현 서남 창업자

과학의 세계에서 시간은 유난히 천천히 흐른다. 곧 실마리가 잡힐 듯하던 기술이 어느새 간격을 두고 멀어져서 연구자에게 손짓한다. 좀더 노력해 보라고. 연구자들은 그 희망의 빛을 쫓아서 20~30년을 매달린다. 그나마 성공하면 운이 좋은 경우다. 평생을 쏟고도 실패하는 연구가 비일비재하다.

머릿속으로 발견한 이론을 현실에서 확인하는 것도, 자연에서 발견된 현상을 이론으로 완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 테마주 열풍을 빚은 초전도체가 대표적이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후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나오는 데 46년이 걸렸다. 1986년 섭씨 영하 238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해 1987년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고온 초전도체 현상은 이미 상업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아직도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 고온 초전도체 기술을 갖고 20년전 창업에 도전한 문승현(59·사진) 서남 대표는 "기술의 혁신 속도는 사람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느리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꾼다"면서 "그런데 기술로 돈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기술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게 돈이더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국내 초전도 분야의 산 증인이다. 반쯤은 초전도 석학, 반쯤은 벤처기업가인 그는 서울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후 1994년 금성중앙연구소에 입사해 초전도 기술을 연구했다. LG를 나와 서울대 BK 계약교수로 있다가 2001년 정부가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 개발사업'에 참여한 게 서남 창업으로 이어졌다. 사업 아이템은 고온 초전도 선재. 전기가 저항 없이 흐르는 전선이다. 국내에서 고온 초전도 기술로 사업을 하는 기업은 아직까지 서남이 유일하다.

문 대표는 세계가 고온 초전도체 발견으로 떠들썩했던 1987년을 "USO(미확인 초전도 물질)가 참 많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1986년 고온 초전도체 발견 후 전세계에 초전도체 연구 붐이 일었다. 1987년 3월 미국 물리학회 행사가 뉴욕에서 열렸는데, 급히 편성된 초전도체 세션에 수천명이 몰렸다. 50개 넘는 연구그룹이 발표에 나서 저녁때쯤 시작한 행사가 새벽 3시께에 끝났다고 한다.

문 대표는 그해 5월 그 물결에 합류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물리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는 석사생들의 연구실 배정을 2학기에 했는데, 그해는 김정구 교수가 이끄는 초전도체연구실만 특별히 5월에 석사생을 한명 채워줬다. 고온 초전도체 연구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다 초전도체 발표에 깜짝 놀란 김 교수는 국가R&D가 거의 없던 시절에 공무원들을 만나 초전도 연구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 연구계 할 것 없이 초전도가 실용화될 것이란 기대감에 들떴다. 문 대표는 석사과정 시절 하루에도 몇개의 고온 초전도체 샘플을 구웠다. 고온 초전도체도 섭씨 영하 200도 부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가격이 액체헬륨의 200분의 1 수준인 액체질소를 쓸 수 있으니 엄청난 혁명이다. 이 기술 덕분에 초전도체는 과학에서 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특히 구리 케이블을 초전도로 대체하면 효과가 크다. 초전도 케이블 한 가닥으로 흘릴 수 있는 전류가 구리 케이블의 5~10배에 달한다. 기술적으로 원전 1기에서 나오는 전력이 초전도 케이블 한 가닥이면 해결된다고 한다. 토목공사비가 훨씬 덜 들고 변전소도 덜 지어도 된다.
문 대표는 2004년, 그 가능성에 베팅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에 이런 기업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주변의 응원 속에 고생길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나온 기술은 바로 돈이 되지 않았다. 창업 후 6년간 초전도 소재 제조공정을 개발해 시장에 내놨다. 초전도 선재로 돈을 번 것은 창업 13년이나 지나서다. 2017년 한전의 용인 흥덕변전소와 신갈변전소 사이 1㎞ 구간을 초전도 케이블로 연결했다. 세계 최초의 초전도 케이블 시스템 상용화 성과다. 초전도 케이블에 대한 한전의 평가는 좋지만 최근 한전의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게 아쉬움이다.

마흔살 즈음에 연구자에서 기업가로 명함을 바꾼 그는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됐다. 문 대표는 세계적인 초전도체 대가들과 기술 흐름을 공유하는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평생 파고든 고온 초전도 선재 시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최근 LK-99로 촉발된 초전도체 관련주로 분류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문 대표는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와중에 "상온 초전도체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는 공시를 했다. 그 와중에 7년간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사업 시너지를 모색했던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가 지분을 정리해, 문 대표가 다시 최대주주가 됐다. 초전도체 이슈는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다.

문 대표가 최근 주목하는 기회는 빅테크들의 투자가 몰리고 있는 핵융합이다. 빅테크와 세계적인 부호들이 가진 돈의 힘은 과거에는 꿈에 가까웠던 기술을 시장으로 바꿔버린다. 스페이스X가 우주를 산업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AI(인공지능)가 돈이 됨을 보여준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는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에 투자해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기술 완성도 안됐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 2028년부터 매년 최소 50㎿(메가와트)의 핵융합 전기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피터 티엘 페이팔 공동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CEO도 핵융합 투자에 뛰어들었다. 세계적인 석유재벌 기업들도 흐름에 올라탔다.

ITER(국제핵융합실험로)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자들이 2050년께 상용화를 기대하는 것과 달리 이들 기업가는 불과 수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뛴다. 지난해 12월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가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생산하는 '순에너지 확보'에 성공한 것이 투자에 불을 당겼다. 초전도만큼이나 꿈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핵융합이 상용화되면 초전도에도 큰 시장이 열린다. 극한의 고온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플라즈마를 안정되게 가두려면 초전도 기술이 필요하다.

문 대표는 "기업가들은 수년내 핵융합 상용화에 도전하면서 초전도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중 투자자금을 확보해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한 시설투자를 할 예정이라는 문 대표는 "초전도 시장은 기대보다 천천히 열리고 있지만 갈 수밖에 없는 미래다. '메이드인 코리아' 초전도 기술로 뚝심있게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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