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방탄소년단 페스타가 증명한 것](http://contents.dt.co.kr/images/202306/20230621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방탄소년단 페스타가 증명한 것")
당초 경찰은 17일 인파를 30만 명으로 예측했다. 이 정도가 모여도 정말 놀라운 사건이다. 그런데 당일에 실제로 모인 사람은 40만 명에 달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약 35만 명, 그 인근에 5만여 명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12만여 명이 외국인이었다. 가까운 나라에서만 온 게 아니라, 중남미나 유럽 같은 먼 곳에서도 찾아왔다.
대단히 충격적인 사태인데 더 놀라운 건 그날 방탄소년단이 없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가수 때문에 팬들이 집결하는 건 그의 공연이나 팬사인회 같은 것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17일 페스타에 방탄소년단은 없었다. 단지 리더인 RM이 혼자서 3000석 규모 정도 공간에서 대화의 시간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밖에 방탄 가족사진전, 문신 스티커 체험 부스, 방탄소년단 라이브 스크린 같은 소소한 이벤트들이 진행됐다.
이게 사전에 다 고지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방탄소년단이 나오지 않고, 대규모 행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40만 명이 여의도 벌판 땡볕에 모이고 그중 12만 명은 해외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다. 이번 페스타를 통해 방탄소년단이 지구 최고의 스타란 점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날 최고의 행사가 불꽃놀이였는데 인터넷 생중계 시청자 수가 153만 명을 기록했다. 단지 불꽃놀이일 뿐인데 방탄소년단 데뷔를 축하하며 153만 명이 지켜봤다는 것이다. RM이 혼자 진행한 소통 프로그램은 인터넷으로 108만 명이 지켜봤다.
방탄소년단 팬들의 시민의식도 주목 받았다. 40만여 명이 몰렸는데 혼잡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단지 외국인이 무더위 때문에 구급차로 옮겨지는 일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행사가 마무리된 후 말끔히 청소된 모습도 화제가 됐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쓰레기 자체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버려진 쓰레기도 미화원들과 함께 깨끗하게 치웠다고 한다. 이 정도의 사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는 현재 세계에서 방탄소년단이 유일할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방탄소년단은 10년 동안 한국 가요사를 새로 쓰고 팝의 역사도 새로 썼다. 우리 가요 중에서 해외에서 사랑 받는 부문을 흔히 케이팝이라고 한다. 주로 아이돌 음악이다. 케이팝은 서태지와 아이들에서부터 시작돼 HOT 때 완전히 틀을 갖췄다. 2000년대 초에 보아, 동방신기 등의 활동으로 아시아의 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러다 방탄소년단에 이르러 케이팝은 드디어 세계의 팝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을 뒤흔들며 세계 최고 스타가 되었는데, 일단 방탄소년단이 케이팝을 서구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하자 그후론 후배 케이팝 가수들이 수시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게 됐다.
과거엔 동양 남성이 서양에서 백인들에게도 우상 대접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동양인 남성은 웃기는 캐릭터나 무술 등 특수한 영역에서만 서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최고 아이돌(우상)이 되며 그런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그래서 가요사와 팝 역사상의 대사건이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단지 아이돌로서만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지구촌 청년들의 대변자 위상에까지 올랐다. 처음엔 춤, 노래, 뮤직비디오 등으로 서구인에게 발견됐는데, 방탄소년단의 이야기와 가사 등이 알려지며 아티스트 반열로 인정받게 됐다. 더 나아가 '러브 유어 셀프 토크 유어 셀프'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며 큰 반향을 일으킨 결과 지구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의미가 더해지자 더 폭넓은 서구인들의 지지를 받게 됐다.
이들의 활동은 한국에 엄청난 국가브랜드 효과를 발생시켰다. 한국을 아예 모르거나, 인식이 미약했던 이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심었다. 방탄소년단 때문에 한글이나 한국어를 배우게 된 서구인들도 많다. 이들의 대외활동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효과를 일으킬 상황인데 우린 이들의 활동을 가로막고 군대에 보내기로 했다. 이런 자해적 조치가 또 있을까? 이해하기 힘든데, 어쨌든 공백기에도 40만 명이 몰리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다시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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