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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러시아와 회의 뒤엔 휴지통도 뒤져… 로켓기술 정말 간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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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켓 개발 역사의 산 증인
맨 땅에 헤딩하며 숱한 좌절 겪어
러시아와 나로호 기술협력 회의땐
버린 서류 없는지 휴지통 뒤지기도
악전고투 끝 세계 7번째 발사체 자립
"누리호 성공으로 기술 완성도 입증
성능 향상·무게비 개선 등은 과제
연구원들 팀워크와 사명감 최고
국민들께 더 넓은 우주 보여주겠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러시아와 회의 뒤엔 휴지통도 뒤져… 로켓기술 정말 간절했죠"
항우연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로켓맨'으로 살아온 지 어언 36년. 로켓과 함께 한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쏜살처럼 흘러간 세월이 아쉽기도 하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지난달 25일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을 마지막으로 로켓과 이별할 때가 돼서 그랬을까. 36년 간 로켓 제작과 발사 현장을 지키며 늘 마음 한 켠에 자리했던 초조함과 부담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채워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정년 이후의 삶이 더 기대되는 요즘이다.

누리호 3차 발사까지 총 12번의 발사 현장을 지켜온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책임연구원)는 우리나라 로켓분야의 산 증인이다.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로켓 개발 최일선을 지켜 온 로켓 추진기관 분야의 대가 중 한 사람이다. 1993년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인 '과학로켓 1호(KSR-Ⅰ)'를 시작으로 과학로켓 2·3호, 나로호, 누리호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친 발사체들이 우주를 향했다.

오 박사는 "누리호 3차 발사는 정년을 앞두고 현역 연구자 신분으로 마지막 역할을 맡아 진행한 발사였기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며 "3차 발사 준비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3차 발사를 통해 우리 발사체 연구진들의 대단한 기술적 역량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했다.

오 박사는 "통신 오류로 인해 발사가 지연됐음에도 하루 만에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정도로 실력이 높아졌다"며 "지난 30년 동안 숱한 실패와 난관에도 주저하지 않고 탄탄한 팀워크와 사명감을 갖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맨땅에 헤딩'하며 발사체 도전… 첫 실패 딛고 '과학로켓 1·2호' 발사

오 박사는 1987년 한국항공주우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연구용 로켓 개발을 위한 8700만원 규모의 선행연구 과제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사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발사체 불모지나 다름 없을 정도로 각종 시험설비가 전무했고 변변한 기술조차 없었다. 2년이 지난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새로 설립되면서 오 박사는 1단형 과학로켓(KSR-Ⅰ)의 고체추진기관 개발을 맡게 됐다. 그는 "로켓을 개발해 본 실무 경험은커녕 대학원에서 책으로만 배우고 외국 논문을 찾아 본 것이 고작인 상황에서 고체추진기관을 만드는 임무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간신히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업체 등의 도움과 지원으로 고체추진기관을 만들어 연소시험을 마치고, 1993년 6월 첫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9월 2차 비행시험도 성공했다.

그러나, 과학로켓 2호는 첫 발사부터 순탄치 않았다. 오 박사가 개발한 고체추진기관은 2단형 과학관측용 로켓(KSR-Ⅱ)의 2단에 실려 1997년 첫 비행시험에 나섰지만 이륙 후 20초 만에 통신이 끊겨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오 박사는 "첫 비행시험 실패가 가져다 준 좌절과 시련은 예상했던 것보다 컸다"며 "하지만 통신두절 원인을 찾아내 1998년 6월 2차 발사에선 완벽한 성공을 거뒀고, 우리가 처음으로 고도 100㎞의 우주로 쏘아 올린 첫 로켓으로 기록됐다"고 말했다.

◇죽도록 힘들었던 '첫 액체로켓'… '과학로켓 3호' 올리다

오 박사는 과학로켓 2호 성공에 이어 개발하기 시작한 '과학로켓 3호'를 가장 애증하는 발사체로 꼽았다. 고체추진제를 사용한 과학로켓 1·2호와 달리 과학로켓 3호는 국내 최초로 액체추진제를 적용한 로켓이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액체추진기관을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 것이 임무였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려면 고체로켓보다 대형화와 고성능화가 쉬운 액체로켓 기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개발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오 박사는 "처음 개발하는 액체추진기관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시스템 설계부터 밸브, 공급계통 등 모든 것을 자력 기술로 개발해야 했다. 발사 시험장도 없다 보니 그야말로 개발 과정부터 발사 직전까지 어려움과 난관의 연속이었다"고 떠올렸다.

악전고투 속에 과학로켓 3호는 2002년 11월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발사에 성공했다. 얼마나 힘든 개발 과정이었으면 "발사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오 박사는 기쁨보다는 울컥해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첫 액체추진 로켓인 과학로켓 3호를 독자 개발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적 역량과 경험은 나로호, 누리호까지 이어졌다고 오 박사는 강조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러시아와 회의 뒤엔 휴지통도 뒤져… 로켓기술 정말 간절했죠"
항우연 제공

◇쓰레기통 뒤지며 절박함으로 익힌 '나로호' 기술

오 박사는 2005년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진행된 '나로호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나로호는 100㎏급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였다. 1단 액체엔진은 항우연과 러시아가 공동 개발하고, 2단은 우리가 개발하는 것으로 임무가 나눠졌다.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는 자신들의 발사체 기술에 대해 보안을 이유로 우리 연구진의 접근을 제한했다. 심지어 양국 연구진이 참여하는 기술보안 회의에 러시아 보안요원이 따라 들어올 정도로 엄격히 통제했다.
그는 "긴 회의가 끝난 후 회의실에 남아 혹시 러시아 연구진이 버리고 간 서류가 없는지 쓰레기통을 뒤지며 기술을 하나라도 더 익히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발사체 기술 자립을 위한 오 박사를 포함한 항우연 연구진의 절박함이 통했는지 2번의 발사 실패를 이겨내고 2013년 3번째 시도만에 나로호는 힘껏 우주를 향해 솟아 올랐다. 그는 "2차 발사 실패 이후 원인 분석과 보완까지 무려 1년 반 넘게 걸렸지만, 러시아 연구진과 합심해 3번째 발사에 성공했다"며 "러시아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나로호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귀중한 밑거름이 됐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했다. 우주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열망을 이끌어 낸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했다.

◇"나의 마지막 발사 도전기"… 평생 기억에 남을 10년 간의 '누리호' 여정

오 박사는 지난 36년 발사체 연구 인생 중 단연 '누리호'가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누리호는 장장 10년에 걸쳐 설계, 제작, 시험 및 발사 운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우리 기술로 개발한 첫 우주발사체라는 점에서 오 박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18년 자체 개발한 75톤 액체엔진 1기를 장착한 1단형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으로 누리호는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후 누리호 엔진 개발의 최고 난이도인 액체엔진 4기를 클러스터링한 1단부가 완성됐다. 1단과 75톤 액체엔진 1기의 2단부, 7톤 액체엔진 1기의 3단부 등을 총조립한 누리호는 2021년 10월 첫 발사 도전에 나섰다.

오 박사는 "과연 이륙 단계에서 클러스터링된 4기의 엔진이 동일한 추력을 낼 지가 관건이었는데, 의외로 이륙부터 단분리, 페어링 분리, 위성투입 등 모든 과정이 예상과 달리 너무나 원활하게 진행됐다"며 "하지만 3단 엔진이 조기 연소 종료됨에 따라 목표 궤도에 도달하지 못해 누리호 1차 비행시험은 실패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첫 비행시험임에도 3단 연소시간이 짧아진 것 말고 다른 모든 발사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실패 원인 분석과 개선 작업도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2차 발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오 박사를 포함한 항우연 연구진은 1차 발사 실패 이후 2달 만에 3단의 비정상 작동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보완했다. 이런 노력에 이어 2차 발사에 나선 누리호는 2022년 6월 우주를 향해 성공적으로 날아 올라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발사체 자립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2차 발사 성공 기운은 3차 발사에도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누리호는 실용위성 8기를 처음 싣고 목표 궤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우주수송 능력을 확보했음을 보여준 쾌거였다.

오 박사는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은 우리나라가 우리 발사체로 우리의 위성을 언제든지 원하는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상용 발사체 서비스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러시아와 회의 뒤엔 휴지통도 뒤져… 로켓기술 정말 간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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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로켓 1호∼누리호까지 '12번 발사현장' 지켜

오 박사는 "지난달 25일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 3차 발사까지 지난 36년 동안 12번 발사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다"며 "항우연 입사 시절 16명이던 발사체 인력은 현재 250명으로 늘었고 세계 7번째 우주발사체 자립국으로 발전했음이 실감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발사체 개발 과정에서 경험한 숱한 실패와 좌절이 자양분이 돼 발사체 기술 자립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는 "발사체는 개발부터 발사까지 어느 부품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실패로 이어지는 고난도의 기술 집약체"라며 "실패를 겪지 않고선 기술 완성도를 높일 수 없는 분야인 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내야 비로소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우리의 기술은 점점 단단해졌고, 실패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문제를 빠르게 찾아 개선·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 완성도가 높아졌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개발한 나로호는 2010년 2차 발사 실패 후 원인 분석과 책임공방으로 3년이 지난 2013년에서야 3차 발사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누리호는 2021년 10월 1차 발사 실패 이후 2달 만인 12월에 원인을 찾고 2∼3개월의 보완·개선 작업을 거쳐 다음해 6월 2차 발사에 도전해 성공할 정도로 기술 역량이 향상됐다. 실패 이후 발사 재개까지 채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오 박사는 "민간 체계종합기업 주도로 이뤄지는 누리호 4차 발사를 비롯해 5차, 6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누리호를 성능, 무게비 등에서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발사체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리호가 국민들에게 우주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다면 차세대발사체는 우리가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쉼없는 도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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