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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황금알 거위` 배 가르는 천문학적 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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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장
상속세는 자본주의에서 양면성을 띤다. 부의 재분배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반면 부를 축적할 의욕을 꺾는다는 점에선 부정적이다.

과거 상속세는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2004년 고(故)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유가족들이 상속세 1355억원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신고하면서 당시 국내 상속세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해 화제가 됐었다. 2001년 고 정주영 회장 유족들이 낸 상속세는 300억원이었고, 1988년 고 이병철 회장 유족들이 낸 상속세는 176억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고 이건희 회장 유가족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무려 12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고인의 유지를 받아 유가족들이 낸 1조원의 감염병과 소아암, 희귀질환 극복 기부금, 최소 2조원에서 최대 10조원까지로 추정되는 고 이 회장의 개인소장 미술품 기부까지 고려하면 33년 전과 비교해 거의 1000배가량 늘어난 액수다. 전 세계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기록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들은 김 창업자가 남긴 10조원 가량의 자산 가운데 6조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구광모 회장과 조원태 한진 회장 , 신동빈 롯데 회장 등도 부친이 사망한 이후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내려고 은행 돈을 빌린 것으로 전해졌다.

나누어 내는 연부연납을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5년까지인데, 대부분의 상속 재산이 지분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배당과 급여만으로는 매년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낼 방법이 없다. 상속세율은 1999년 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올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최대주주 지분에 대한 최대 할증(20%)까지 가산돼 실질적 최고 상속세율은 60%에 이른다.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속세율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최근 재계 총수들의 상속세 부담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늘었다. 그만큼 경영과 회계 투명성에 대한 감시가 한층 강화됐고, 재계 총수들의 높아진 준법·사회적 책임 경영의식도 이 같은 변화에 한 몫을 했다.

대신 경영 승계를 받은 총수들과 유족들은 은행 대출을 받느라고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빚을 떠안게 됐다.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가 총 4조원이 넘는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계열사 주식도 일부 매각해 상속세에 충당했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신용대출과 배당소득 등으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대출을 받지 않으면 고 김정주 창업자의 유족처럼 상속세의 일부를 넥슨그룹 지주회사인 NXC 지분 29.3%(약 4조7000억원)로 물납해야 했다. 기획재정부는 졸지에 넥슨 그룹의 2대 주주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는 수 밖에 없는데, 요즘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이자 부담만 해도 상당한 것으로 안다"며 "그렇다고 선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야 하는 총수들이 보유한 경영권 지분을 처분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부연납이 끝나도 총수들은 상당 기간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고, 경영승계를 앞둔 대기업들은 상속세 부담이 두려워 기업 가치를 높이는데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국가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제 재계 총수들의 의식도 바뀐 만큼, '부의 재분배'라는 목적으로 만든 상속세의 본래 취지에 맞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부의 재분배가 서민들보다는 은행쪽으로 더 이뤄지는 상황이고, 여기에 상속 과정에서 우량 기업의 지배구조가 약해지면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상속세(50%)와 소득세(45%)의 최고세율 합계가 95%로 일본(100%)에 이어 OECD에서 두 번째로 높고, 기업승계 시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적용하면 10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과도한 상속세를 두고 일부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부를 나누겠다고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어 봐야 일자리와 기업가치만 줄어들 뿐,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득이 없다는 뜻이다. 이제 기업들이 정경유착을 앞세워 국민들의 세금을 축낼 일도 없으니, 합리적인 부의 재분배 방안을 다시 고민할 때다. 상속세제는 여름이 왔는데도 겨울 옷을 입고 있는 꼴이다. 제도는 시대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고치는 게 순리다.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황금알 거위` 배 가르는 천문학적 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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