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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仁醫 44년` 소아외과 버팀목 … "은퇴하면 인생2막 의료봉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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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기형수술 1인자·3만건 수술경력… 맘카페선 신뢰의 상징
정년퇴임후 선배 부탁에 몇년만 한다했는데 벌써 10년이나 흘러
춘천서 기차로 출퇴근 건강 더 좋아져… "뒤이을 후배없어 아쉽죠"
[오늘의 DT인] `仁醫 44년` 소아외과 버팀목 … "은퇴하면 인생2막 의료봉사하고 싶어요"
박귀원 소아외과전문의 교수. 이슬기기자 9904sul@



여성 소아외과 전문의 1호… 박귀원 중앙대병원 석좌교수

"소아외과라는 곳은 아픈 아이를 수술해서 낫게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아픈 아이를 둔 부모까지도 보듬어야 하는 곳이죠. 육아 경험이 짧은 젊은 엄마, 아빠들은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함께 아파하고, 아이보다도 훨씬 불안해하거든요."

우리나라 여성 소아외과 전문의 1호인 박귀원 중앙대병원 소아외과 임상석좌교수(74·사진)는 반세기 동안 병원 현장을 지켜온 대한민국 소아외과의 대모이자 3만 건 이상의 수술 경력을 보유한 소아외과 최고의 권위자다. 그럼에도 그런 거창한 수식어보다 박 교수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은 '인자한 의사, 인의(仁醫)'가 아닐까 한다.

맘카페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박 교수는 '박귀원'이라는 이름 세글자만으로 부모들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다.

소아탈장 수술의 대가로서 입소문이 난 그에게 수술을 받았다는 후기글에는 "정말 인자하신 교수님이었다. 수술 준비해준 간호사 선생님이 박 교수님께 수술받는 건 행운이라고 할 정도로 수술을 잘 하신다고 해서 안심이 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박 교수는 "아이의 수술은 부모가 결정해야 하지만, 아이의 몸에 메스를 대야 하는 걸 반기는 부모는 없다"면서 "수술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부작용이 어떻고, 후유증이 어떻고 하니 어찌 쉽게 결정할 수 있겠나. 부모가 안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소아외과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급성충수돌기염, 흔히 맹장수술을 해야 하는 아기가 있었는데 아이의 작은 몸에 칼을 대야 하는 외과수술이다보니 흉터가 크지 않은 복강경을 요청하는 부모가 있었다"면서 "흉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수술을 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의 수술은 복강경보다 흉터를 더 작게 남길 수 있는 뛰어난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수술대를 지키며 쌓은 경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40년이 넘게 수술을 하다보니 어릴 적 그에게 수술을 받았던 아이가 이제는 부모가 돼 자신의 아픈 아이를 봐달라며 그를 찾아오기도 한다. 자신이 수술을 해줬던 작은 아이들이 성장해 사람을 살리는 의사, 간호사로 재회한 경우도 더러 있다. "선생님 덕분에 잘 컸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단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박 교수는 1972년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를 시작하면서 의술의 길을 걸었다. 여성 의사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외과 전문의, 그것도 어린 아이를 수술해야 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를 택한 것은 당시 은사님의 영향이 컸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소아외과가 없던 시절. 소아외과 전문의로 미국연수를 마치고 1977년에 돌아온 김우기 교수는 이듬해 5월 서울대병원 처음으로 소아외과를 신설했고, 당시 원자력병원에서 암 수술을 하던 박 교수에게 함께 해줄 것을 권유했다. 박 교수는 "암 치료도 결코 쉽지 않았는데 성인보다 훨씬 작은 아이를 수술해야 한다니 얼마나 어려울지 걱정을 안할 수가 없었다"면서 "김 교수님이 2~3주 정도 지나 다시 연락을 주셨고, 함께 하겠다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병원에 소아외과 전임의 과정이 생긴 1979년 9월부터 전임의로 합류했다.

박 교수는 그 이후로 무려 44년이라는 세월 동안 소아외과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1년에 1000건 안팎, 총 3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하면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의 꿈과 미래를 지켜왔다. 선천성 기형 수술 일인자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원래 박 교수는 2014년 2월 서울대병원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워낙 고된 의료계 생활이었던 터라 춘천에 새 둥지를 틀고, 자연과 함께 의료봉사를 하면서 인생의 2막을 즐기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박 교수의 은퇴는 10년이나 미뤄졌다. 박 교수의 실력을 아까워한 선배가 박 교수의 발목을 잡았다.


김성덕 전 중앙대의료원장은 소아 마취 전문의로 박 교수와는 항상 수술방에서 만나던 서울대 의대 1년 선배다. 김 전 원장은 "중앙대병원에는 소아외과가 없으니 와서 몇년만 봉사를 해달라"고 했고, 박 교수는 간곡한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휴식기도 없이 정년퇴임 직후인 2014년 3월 중앙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교수는 "3~4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벌써 10년을 넘어가고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일주일에 5일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 생활을 하고 있다. 월·화·수는 외래, 목·금은 수술 위주로 진행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장시간 출퇴근이 쉬울 리 없지만 박 교수는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면서 환한 표정이다. 그는 "서울 살 때는 늘 차를 타고 다녔는데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하루에 8000보 이상을 걷는다"며 "사람들도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 교수가 그 오랜 세월 지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그의 깐깐하고 꼼꼼한 자기관리 덕분이다. 박 교수는 수술방을 지나치게 환하게 하는 것을 꺼린다. 지나친 빛은 잔상이 남아 되레 수술을 방해할 수 있는 탓이다. 또, 소아수술용 확대경(룹베)에 의존하기보다 맨눈으로 수술한다. 그는 안과 수술을 받은 적 없이 지금도 0.8이상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박 교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바로 자신의 뒤를 이어줄 후배가 없다는 사실이다.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의 대학병원에 간신히 1~2명씩 있고, 지역으로 가면 훨씬 더 드물다. 소아외과 전공 희망자는 갈수록 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소아 진료 관련 과목은 의료진 만성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아플 때 치료를 받으려면 새벽부터 병원 앞에 줄을 서야 한다는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박 교수의 은퇴가 점점 더 늦춰진 이유다.

그가 무려 50년 가까이 의료 현장을 지킬 수밖에 없던 것은 가장 훌륭한 의술은 마음을 치료하는 '심의'(心醫)라는 믿음과 사명 때문이다. 박 교수는 "세조실록에 보면, 의사를 여덟 종류로 분류하는데, 마음을 치료하는 의원인 심의,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식의(食醫), 약으로 치료하는 약의(藥醫) 등이 있고, 나머지는 위급한 환자를 보면 허둥대는 혼의(昏醫), 적당하지 않은 약을 쓰는 미친 의사인 광의(狂醫) 등이 있다. 심의를 가장 으뜸으로 친다"면서 "후배들에게 항상 환자의 병을 잘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말해 왔는데 내가 먼저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교수는 수술만큼이나 의료봉사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2010년 무량감로회라는 의료봉사단체를 만들어 10년동안 회장을 맡았다. 노숙자 치료나 지방 의료봉사 등을 해오다 지금은 조계사 측의 협조를 얻어 불교대학 강당에서 매월 두번째 일요일마다 봉사를 하고 있다. 후배가 생겨 정말 은퇴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인생 2막을 의료봉사를 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10년 넘는 봉사가 대단치 않은 일이라 말한다. 그는 "아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잘나서 의사가 된 게 아니라 사회에 그만큼 빚을 진 거라고. 그러니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빚을 갚는 게 봉사하는 거밖에 없지 않느냐고"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박 교수는 지난 2021년 한국여자의사회의 제30회 '여의대상 길봉사상'을 수상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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