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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의 정치사기]김남국 의원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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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의 정치사기]김남국 의원의 가면
이자현 생애가 담긴 고려사<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고려 중기 이자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외척인 인주(仁州, 지금의 인천) 이씨 집안의 자제였다. 집안은 태후(太后, 황제의 아내)가 두 명이나 배출될 정도로 권세가 강했다.

명문가 출신에 걸맞게 일찍 관직에 나갔고, 27세에 왕립음악기관인 대악서(大樂署)의 령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아내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회의감에 빠졌다. "부인도 없는 상황에 개경에 있어서 무엇하리".

결국 관직을 버리고 춘주(春州, 강원도) 청평산에 들어갔다. 부친이 지은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고치고 당과 암자를 지어 나물밥과 베옷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며 참선 수행을 즐겼다.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함께 조용한 방에 들어가 해가 질 때까지 묵언 수행을 했으며, 때로는 덕이 높은 옛 스님의 격언을 두고 논쟁도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심법(心法-마음을 쓰는 법)은 고려 관료계에 널리 퍼졌다.

당시 황제인 예종도 이자현을 주목해 별궁으로 불렀다. 예종은 그에게 마음을 수양하는 요체를 물었다. 그러자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며 '심요(心要)' 한 편을 바쳤다. 예종은 감탄해서 이자현에게 상을 내렸고, 계속 곁에 있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계속 산으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예종은 별 수 없이 이자현의 청을 받아들였고, 돌아가는 길에 차, 향, 법복 등 선물을 하사했다.

아들인 인종도 이자현에게 가르침을 받길 원했다. 그래서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내의(內醫)를 보내 진찰하게 하고 차와 약도 보냈다. 인종의 바람과 달리 이자현은 65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자현이 죽은 뒤, 반전이 일어났다. 그가 명성처럼 소탈하고 청렴한 게 아니라 오히려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한 관리가 인근에 살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는 남몰래 재물과 곡식을 쌓아놓고 살았다. 심지어 자신 집안의 위세를 이용해 힘없는 농민의 물건을 빼앗기도 했다. 한 농민은 "그가 떠나기 전까지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후 황실이나 관료사회가 이자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추측해보건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당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가슴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다. 그는 "지금 모든 정부 부처가 다 동원돼서 함께 한 마음으로 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준엄하게 외쳤다.

그러나 수개월 뒤 가면이 벗겨졌다. 김 의원은 이날 상임위 중 자리를 비우고 코인을 거래한 사실이 밝혀졌다. 겉으로는 참사를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척했지만, 뒤로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 챙긴 셈이다. 코인을 통해 얻은 수익도 수십 억원이다. 김 의원이 그 동안 의정활동을 통해 보여줬던 이른바 정의의 코스프레가 위선이었던 셈이다.

코인을 거래해서 얻은 수익을 사용한 곳도 의문투성이다. 김 의원은 코인을 처분해 대선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대선 전후 3개월 간 인출은 440만원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코인 연계 은행 계좌로 2억원을 쪼개서 인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 자금 세탁 의혹은 덤이다.

김 의원이 방송해서 보여준 구멍 난 운동화, 소개팅 콘셉트의 유튜브에 나와 "매일 라면만 먹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남들에게 극심한 고통으로 다가오는 '가난'을 코스프레로 내세우면서 정치하면 안 된다.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김 의원에게 묻고 싶다. "현재 국회의원인 당신과 고려시대 이자현은 무엇이 다른가요?".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김세희의 정치사기]김남국 의원의 가면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김남국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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