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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어민 잔혹사`, 갈마반도 앞 高島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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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어민 잔혹사`, 갈마반도 앞 高島 이야기
명사십리 백사장에 해당화 피는 영흥만 앞 작은 섬

수백년간 축복받은 어장 지킨 13가구 소박한 주민

고리대 쌓이며 일본인 무라카미에게 터전 빼앗겨

모든 수입 앗아가 작은 배 타고 호구지책 신세로


갈마반도(葛麻半島)는 함경남도 영흥만 남쪽으로 뻗어 나온 반도다. 원산항(元山港)의 자연적 방파제 구실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고운 모래로 유명한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수욕장이 있고 해당화로도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갈마반도 바로 앞에 작은 섬 '고도'가 있다. 동아일보는 1923년 5월 26일부터 3일간 기사를 통해 이 작은 섬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찾아 100년 전으로 떠나가 보자.

동아일보는 '절도(絶島) 고도(高島)의 애화(哀話)'라는 제목의 기사로 만경창파(萬頃蒼波)에 생명을 달고 살아오던 13가구의 가혹한 운명을 전한다. "갈마반도에 아침 안개 걷히고 동해 바다 물결 고운 아침에 원산 항구에서 동북방으로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가 마주 닿은 수평선 위에 한 점의 검정 구름같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고도(高島)라고 부르는 외로운 섬이다. 그 섬은 주위가 5리(里)가량 밖에 아니 되며 땅이 척박하여 별로 나는 것도 없고 볼 것도 없으나 벌써 몇백 년 전부터 계견(鷄犬)의 우는 소리가 울려 왔고 지금에는 열세 집이나 되는 인가(人家)가 있다. (중략) 그네들의 전답(田畓)인 넓고 넓은 어장(漁場)에는 지주도 없고 소작인도 없으며 그 어장을 관리하는 것은 섬 안에 사는 13호(戶)의 사람들이 돌려가며 수고를 하여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는 중에 그날그날을 지나갔다. 그러나 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도 세상 바람은 불어오게 되어 지금부터 13년 전에 의외의 불행이 그네들을 찾아왔다. 말로는 들었으나 본 일도 없고 같이 말해 본 일도 없는 일본 사람이 그네의 생명수인 어장을 차지하겠다고 찾아왔다."

이 작고 외로운 섬에 일본인의 마수(魔手)가 뻗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장에 나가 그물을 치고 있던 김삼돌이는 일본 사람에게 매를 맞고 집으로 쫓겨왔다. 섬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들어 이것은 수백 년 전부터 우리 조상이 찾아낸 어장이며 우리가 대대로 목숨을 달아 오던 어장인데, 이것을 뺏을 사람이 누구냐고 통분히 여긴 사람도 있고, 그 놈을 때려죽인다고 피를 끓이는 젊은 사람도 있었으나 필경은 무서운 일본 사람에게 손을 대면 안 되겠다는 노인의 훈계가 끝을 막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조상 대대로 목숨을 매어 오던 어장을 지키던 김삼돌이란 사람은 일본인에게 매를 맞고 쫓겨 왔을까. 그것은 앞으로 어떤 일의 전조(前兆)일까.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어민 잔혹사`, 갈마반도 앞 高島 이야기


"도회(都會)에서 생장한 자칭 개명(開明)한 사람들도 일본 사람이라 하면 범보다도 무서워하던 때이거늘, 섬에 사는 채상옥(蔡尙玉)이라는 사람이 차례대로 돌아오는 어장 관리를 맡아 할 때에, 혼자 어장 관리에 들어가는 물자를 다 꾸릴 수가 없어서 원산 중리 2동에 사는 김현빈(金賢彬)이란 친구를 찾아보고 많지 않은 돈을 꾸어다 쓴 일이 있었다 한다. (중략) 그런데 그해 어장에서는 생선이 잡히지 않고 채상옥은 더욱 곤란한 중에 그에게 돈을 꾸어 주던 김현빈에게 조차 돈을 쓸 일이 있었는 고로, 김현빈은 무라카미(村上)라 하는 일본 사람에게 그 어장을 핑계하고 돈을 얻어 쓴 일이 있었다. 이것이 그 어장을 일본 사람에게 점령케 된 원인이다."

결국은 돈 문제였다. 이제 섬은 채권자인 무라카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고도 주민이 빌어 쓴 채무로 인해 이제 무라카미는 이 섬의 왕이 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지 말대로 하였으며, 어떠한 때에는 도장이 쓸 일이 있으니 가져오라 해서 제 맘대로 사용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하여 고도를 점령한 무라카미는 신해년(1911년)부터 어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니 비록 위력(威力)에 눌려 말은 못한다 할지라도 그네의 가슴이야 오직 아팠으랴. 아픈 가슴을 부둥켜 안고 무라카미의 어장에서 소작인이 되어 있던 그네들은 또 한 가지 희망조차 끊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어장에서는 수백년 래의 습관으로 잡히는 생선을 육지보다 3분의 1의 저렴한 시세로 그 섬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것을 '물금'이라 해서 어디서든지 그리하는 것이며, 또 만경창파에 목숨을 붙이고 사는 섬 사람에게 당연히 허락할 권리이다. 그러나 남의 어장을 무리하게 점령한 무라카미는 그러한 고래(古來)의 습관을 무시하고 어떠한 때에는 육지에서 1원 2원에 판 생선 한 마리에 12전으로부터 제일 많아야 35전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준 일까지 있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는 신문에 계속된다. "원래 이 고도 어장은 생선이 잘 잡히기로 유명하여 '고도 어장은 양어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수입이 있어도 그 섬 중 사람은 오히려 부족한 때가 많았거늘 하물며 모든 수입을 무라카미에게 몰아주고 밥상 밑에서 밥풀을 줍는 격으로 여간한 잔돈푼이나 얻어 먹는 것으로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 가랴. (중략) 그네들은 무라카미에게 의지하지 않고 다시 나뭇잎 같은 편주(片舟)를 타고 넓고 넓은 바다에 나가 한 줄기 낚싯줄을 담그고 앉아 오고 가는 생선을 기다리게 되었다. (중략) 원래 그 섬에는 불완전하나마 방파제(防波堤)가 있었다. 그러나 무라카미의 눈이 이 선창(船艙) 위에 번뜩이기 시작하더니, 월전(月前)에 이르러서는 필경 그것을 마저 탈취하기 위하여 선창의 사용 허가원을 감독관청에 제출하였다.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리는 없는 것이라. 한편으로는 관청에 면허를 청원하고 한편으로는 대표를 뽑아서 총독부에 탄원까지 제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무자비한 자본에 의해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어디 100년 전에만 있었으랴.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갈마반도 고도 주민들의 피눈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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