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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딥테크 창업 한우물… "혁신적 기업가는 예술적 자질도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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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덕에 과학고 입학한 '기발한 수재'… KAIST에서 교수까지
잠재력 가진 기업 210곳에 투자해 91.6% 생존, 가치 20배 키워내
"점수로 성공·실패 가르는 현실, 아픔 헤아려야 다른 미래 열 것"
[오늘의 DT인] 딥테크 창업 한우물… "혁신적 기업가는 예술적 자질도 있어야죠"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퓨처플레이 제공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서울과학고를 나온 게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덕분에 KAIST에서 박사까지 하고 두번의 창업에 도전할 수 있었죠. 졸업생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으니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창업 기업들도 수월하게 발굴해 키울 수 있었고요."

초기 기술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길러내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49·사진)는 딥테크 창업 한 우물을 파고드는 기업가다. 류 대표는 돈을 투자해서 최대의 이익을 얻는 데 초점을 두는 벤처캐피털과, 숨은 보석 같은 창업 초기 기업을 찾아내서 돈과 지혜, 네트워크를 쏟아부어 키워내는 액셀러레이터는 근본부터 다른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 전자전산학 학·석·박사를 받은 후 8년간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2000년대 초 오프라인의 맥락을 자동으로 온라인으로 연계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아이콘랩을 창업했다. 아이콘랩을 연 매출 100억 기업으로 키워낸 류 대표는 2006년에는 영상인식 기술 기업 올라웍스를 창업해 2012년 인텔에 매각했다. 약 350억원에 회사를 넘긴 후 인텔코리아 상무로 합류했다가 2013년 퓨처플레이를 세웠다.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이길 만한 기술력과 글로벌 규모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기술기업을 찾아내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퓨처플레이는 지난 10년간 AI(인공지능) 헬스케어 기업 뷰노, 우주발사체 기업 이노스페이스, 심전도 측정 웨어러블 기기 기업 휴이노 등 210개가 넘는 기업에 112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투자한 기업의 91.6%가 생존해 있고, 전체 투자 기업의 누적 가치는 20배 이상 커졌다. 그중 3개 기업은 IPO(기업공개)에 성공했고 8개 기업은 M&A(인수합병)가 됐다. IPO를 준비하고 있는 곳은 10곳이 넘는다.

기술에 대한 눈과 실전 창업 경험으로 다져진 류 대표는 흔히 상상하는 일반적인 과고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수학보다는 문학과 국어에 자신 있었다. 아버지가 시인이고 어머니도 국문과 출신이다 보니 집에는 문학책이 널려 있었다.

그는 "당시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서울과학고에 준비 없이 도전했는데, 결과적으로 국어 실력 덕분에 합격했다"면서 "학교에서 입시문제를 자체적으로 냈는데 국어 선생님이 '폭주'해서 국어 시험이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 결국 국어 점수가 합격·불합격을 갈랐는데, 만점 가까이 받은 덕분에 수학·과학 영재들이 모이는 과학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입학 후 도전이 찾아왔다. 류 대표가 한 시간이 걸려도 못 푸는 문제를 친구들은 10초 만에 풀어냈다. 입학 후 치른 첫 시험의 성적은 30명 중 28등. 그러나 부모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28등 해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게 아니라 밑에 2명이나 있다며 축하를 해주셨다. 서울시 전체에서 180명 뽑는 학교를 갔는데 전교 등수가 더 낮은 학생이 10명 정도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축하 외식을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좌절에 가깝던 수학·과학 성적도 차차 나아졌다.

KAIST에 입학한 그는 1998년 이공계생들의 생활을 조명한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스쳐가는 엑스트라 역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대사가 생기고, 이후 대본에 이름이 실리기까지 했다.

류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는 특별한 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비즈니스 맨,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이는 아티스트, 전문적인 영역에서 잘 해내는 의사나 판검사 같은 사람은 스페셜리스트인데 스타트업 대표는 세가지 자질을 다 가져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혁신적 기업가의 자질로 스페셜리스트가 너무 강조되는데 아티스트의 자질도 중요하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끌리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까지 받고 나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는 류 대표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슈퍼파워를 발휘하고, 정말 좋아하는 그 무엇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런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이공계가 이뤄낸 것에 대해선 날선 평가를 내놨다.

그는 "우리는 숫자를 높이는 건 기막히게 잘하는데 발명은 못한다. 이유는 문제를 찾고 정의하지 못해서인데 그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측은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KAIST 박사를 받을 정도가 되면 '준 사이코패스'다. 감각기관을 다 잠그고 논문 쓰는 기계가 되는 것"이라면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으면 엔지니어 자격이 없다. 사람들이 불쌍해서 더 나은 삶을 열어주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게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팝은 있는데 K-테크는 없다. 대한민국 유니콘이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다"는 류 대표는 중국의 Z세대는 창의력에서 한국 Z세대를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도 경쟁자로 만들고 수능 점수를 1점이라도 높이는 것만 신경쓰는 교육, 정부 연구개발 지원금을 받은 과제를 점수로 평가해서 1점 차이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정책이 오늘의 우리 성적표를 만들어냈다"면서 "사람의 아픔과 고객의 문제를 찾고 헤아리는 데 시간을 쓰는 사람과 기업이 다른 미래를 열 것"이라고 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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