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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칼럼] 저금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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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강현철 칼럼] 저금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한국은행(한은)이 25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연다. 이번 회의에서도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원·달러 환율은 크게 출렁이지 않는 반면 경기가 좋지 않아 경기 부양에 더 신경써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에게 주어진 임무는 크게 세가지다. 물가와 금융, 고용(일자리) 안정이 그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이 세가지 모두를 책임지는 반면 한은은 한국은행법에 물가와 금융 안정 두가지를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 주기적인 금융공황과 경기불황을 겪었던 미국은 1913년 연준법을 제정, 연방준비은행을 탄생시키고 금융안정을 위한 최종 유동성공급자, 금융기관과 시장의 규제 및 감독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했다. 2차 오일쇼크 당시인 1979~1987년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다. 정치권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기준금리를 연 20%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려 물가를 잡았다.

물가·금융·고용 안정을 달성하는 통화정책 수단은 두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 조정이고, 또다른 하나는 유동성 조절이다. 19세기 영란은행을 분석한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은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장의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중앙은행이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해줌으로써 대중에게 대규모 예금인출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 기능을 처음으로 규정했다. 이는 그후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교범이 됐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 유례없이 초장기동안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왔다. 제로 금리,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도 서슴지 않았다. 위기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금융 안정과 경기 부양을 위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돈을 뿌려댔다. 2019년 발생한 코로나는 저금리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정책 기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계기로 바뀌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뛰고, 글로벌 공급망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세계적으로 물가가 폭등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으로 정책 방향을 틀고 금리 인상으로 돌아섰다. 한국은 2021년 8월부터, 미국은 2022년 2월부터 지금까지 각각 열 차례에 걸쳐 3.0%포인트, 5.0%포인트 금리를 올렸다.

경기를 살리고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려면 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저금리는 물가 안정을 해치고, 경제 주체들의 위험 감수 성향을 강화시켜 거품을 유발하는 대가가 따른다. 물가 불안과 자산시장 버블의 후유증은 서민 생계를 어렵게 하고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문재인 정권 아래 부동산이 폭등한 것은 세금 중과 등 수요 억제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던 정부의 실정(失政)이 문제였지만, 너무 오랫동안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 정책을 고수했던 한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시장에선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이 적지 않다. 주식 투자자나 대출이 많은 경제 주체들에겐 고금리가 악(惡)일 것이다. 그러나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유한한 자원을 필요한 곳에 우선 배분하고,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해 경제를 건실하게 한다.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을 더한 수준을 적정금리로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이고 정부가 목표로 한 올 성장률이 1%대 중반이니 대략 4~5%가 적정금리다.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저금리라는 마약에 취해있었다. 그 결과가 물가와 부동산 가격 급등,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가계부채다. 한은은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권리를 갖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포퓰리즘에 유혹되기 쉬운 시점이다. 한은은 저금리의 아편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통화정책의 정상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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