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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산업 미래 바꿀 양자컴 경쟁, 공격투자·인재 확보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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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 주도
경제 넘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기술
백화점식 육성 대신 양자컴퓨팅 집중을
인력 키우고 국가차원 투자 적극나서야
10억 넘는 대형 기술 이전만 4건
심자도·뇌자도 측정장치 세계적 명성
독일·호주 등 해외기업 잇단 러브콜
'쓰이는 기술' 연구에 30년 헌신
다른 연구자들 논문 쓸 때 특허 출원
활용에 방점 찍어야 좋은 논문도 나와
[이준기의 D사이언스] "산업 미래 바꿀 양자컴 경쟁, 공격투자·인재 확보만이 살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장


그의 연구철학은 확고하다.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는 절대 하지 않는다. 목적과 수요가 있는 연구, 실용적인 연구를 고집한다.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쓰이는 기술 개발'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30년 넘는 연구인생을 통해 지켜온 철칙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논문을 쓸 때 그는 특허를 냈다. 지금도 연구하고 남는 시간에 논문을 쓴다.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장은 "기술개발의 목적은 어딘가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고, 기술의 활용성을 높이려면 완성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며 "이를 위해선 시스템적 접근을 통해 요소 기술과 시스템 기술 간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이런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덕분에 생체신호측정 분야에서 자체 확보한 스퀴드 센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심자도·뇌자도 측정장치에 대한 기술 완성도를 높여 연구자들이 평생하기 힘든 10억원 넘는 대형 기술이전을 4건이나 성사시켰다. 그 과정에서 SCI(과학기술논문색인) 논문 110여 편을 포함한 200건 이상의 논문을 내고 특허 출원·등록도 100건 넘게 했다.

지난해부터는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 '한국형 양자컴퓨터' 개발을 이끌고 있다. 이 단장은 "양자 선도국에 비해 연구인력, 인프라, 예산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지만, 양자컴퓨팅은 국가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 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팅은 큐비트 수와 컴퓨팅 속도, 요소 기술 등을 어떻게 시스템화해 성능과 경제성을 높이는가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면서 "앞으로 기업이 양자컴퓨팅 분야를 주도하면서 대학과 연구기관이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부가 꿈이었던 시골 소년, 세계적 과학자가 되다=이 단장은 시골에서 살다 보니 어릴 적 농부가 돼야 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진학해선 하얀 셔츠를 입고 다니는 면사무소 직원을 보면서 공무원이 돼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어느 주말,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충격을 받았다.

이 단장은 "일요일인데 몇몇 학생이 교실에서 성문종합영어를 놓고 공부하고, 저녁에는 사설 영어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세상에 온 듯 깜짝 놀랐다"면서 "그 때부터 좀 더 공부에 분발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공부에 매진한 결과 성적이 일취월장해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몇몇 선배가 당시 서울 홍릉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에 합격해 축하 인사를 받는 모습을 보고, 대학원 진학에 도전해 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석사에 입학, 본격적으로 과학자 길에 들어섰다.

그는 "등록금이 공짜고 공부도 더 깊이 할 수 있어 과기원 석사 진학을 결정했다"며 "석사 시절, 실험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맨 땅에 헤딩하며 연구와 공부한 것이 아까워 박사과정 진학도 결정했다"고 했다.

◇'월화수목금금'…연구에 올인하다=박사학위를 마친 20대 후반에 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출신 선배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었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발부터 삐걱댔다. 전공인 광학 분야와 전혀 다른 양자물리 연구실에 배치돼 생소한 '스퀴드(초전도양자간섭장치) 소자' 개발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는 "초전도체, 고체물리, 양자 등의 전공자가 연구하는 실험실에 광학 전공자가 참여한 것"이라며 "마치 농구 선수가 축구팀에 와서 축구 선수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해 보지 않은 연구를 해야 하다 보니 초기 2년간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스퀴드 소자 개발'이라는 미션을 포기하지 않고 파고들었다. 당시 신혼 초임에도 집보다는 연구실과 클린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이 단장이 기술 개발에 전념할수록 주변에선 열악한 성능의 장비로는 스퀴드 센서 같은 민감도가 높은 소자를 개발하는 게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어 독일에서 온 전문가조차 장비와 시설 성능을 보고는 도저히 소자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시간을 연구실과 클린룸에서 머물며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 장비 성능을 높이면서 소자 개발에 공을 들였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센서 관련 핵심 기술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로 연구연가도 갔다. 운좋게도 그 곳에서 딱 맞는 연구실에 소속돼 센서 회로 관련 기술을 배워 표준연에 돌아와 스퀴드 센서를 4년 만에 개발할 수 있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산업 미래 바꿀 양자컴 경쟁, 공격투자·인재 확보만이 살길"
표준연 제공

◇악전고투 끝에 '스퀴드 센서' 개발… 뇌자도·심자도 등 '대박 기술이전'=스퀴드 센서는 뇌나 심장에서 발생하는 매우 미약한 자기장을 측정하는 초고감도 센서로 인류가 개발한 센서 중 가장 민감도가 뛰어나다. 비접촉·비침습 특성으로 인체에 해가 없고, 뇌 활동부위의 3차원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뇌전증 등과 같은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이 단장은 "스퀴드 센서는 뇌나 심장에서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자기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핵심 소자"라며 "이를 바탕으로 구동회로, 냉각장치, 증폭기 등의 요소기술까지 개발해 이를 스퀴드 센서와 시스템화해 뇌자도·심자도 측정장치를 국산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6년 4채널 스퀴드 장치 개발을 시작으로 40채널 스퀴드 시스템 개발(1999년), 64채널 심자도 측정장시스템 개발(2004년), 헬멧형 128채널 뇌자도 측정 시스템 개발(2008년) 등 세계 최고 성능의 뇌자도·심자도 장치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생체신호측정 분야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의료기기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졌다.

드디어 2010년 독일 메디컬 기업에 심자도 측정장치를 기술이전하는 첫 쾌거를 일궜다. 심자도는 심장 근육에서 발생하는 심근전류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생체 자기장을 측정해 심장질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한 번 물꼬가 터지자 기술이전 요청이 이어졌다. 2016년에는 호주 의료장비 기업에 뇌자도 측정장치를 기술이전 했다. 뇌자도 장치는 미세한 전류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장 신호를 측정해 뇌전증, 파킨슨병, 자폐증, 치매 등 뇌신경계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국내 의료장비 스타트업인 AMCG이 심자도 측정장치 기술이전을 받아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전된 기술은 96채널의 센서에 영하 270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장치를 위한 고가의 헬륨을 액화해 100% 재활용할 수 있어 다른 제품에 비해 기술·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단장은 "지난 30년 가까이 극미세 자기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스퀴드 센서 제작 기술과 이를 활용한 정밀측정기술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완성도를 높여 왔기에 국내외 기업에 10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받고 이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산업 미래 바꿀 양자컴 경쟁, 공격투자·인재 확보만이 살길"
◇"양자컴퓨팅에 국가적 투자 집중해야"=이 단장은 지난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양자 선도국을 추격하기 위한 국가 연구개발 과제인 '한국형 50큐비트 양자컴퓨팅 시스템' 프로젝트를 맡은 것이다.

오는 2026년까지 표준연을 주관기관으로 9개 산학연이 참여해 초전도 기반의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핵심 요소기술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 단장은 "양자컴퓨터는 국내 연구인력 풀이 부족하고, 핵심 부품과 장비 기술이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 쉽지 않은 도전"이라며 "요소기술을 빠른 기간 내에 확보해 어떻게 최적화하고 시스템화하느냐에 따라 우수한 성능의 양자컴퓨터 개발 성패가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인력확보가 시급하다는 게 이 단장의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우수한 인력 확보가 현실적으로는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양자컴퓨터는 향후 경제·산업적 효과에 못지 않게 국가 경제·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국가 차원에서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이 단장은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양자 선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양자기술의 모든 분야를 백화점식으로 육성하기보다는 미국 구글, IBM 등 양자 선도기업처럼 양자컴퓨터에 집중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제한된 자원으로 선도국을 쫓아가야 하는 만큼 철저히 수요에 맞춰 민간 주도로 양자기술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에 필요한 큐비트 소자와 고주파 회로, 냉각장치, 증폭기, 소프트웨어 등 요소기술을 확보해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산업 미래 바꿀 양자컴 경쟁, 공격투자·인재 확보만이 살길"
◇출연연 "논문 쓰기 위한 연구 대신 활용가치 집중해야"=이 단장은 목적 지향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논문을 위한 연구 대신 쓰임새 있는 연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책연구소 연구자라면 더더욱 국가와 국민을 위해 활용 가치가 높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이언스에 가장 가까운 물리를 전공했지만, 출연연에 몸을 담았기에 물리공학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출연연 연구자들은 좋은 논문을 쓰려고 들어간 게 아닌 이상 임무 지향형 연구를 통해 쓸모 있고 활용 가치가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논문을 쓰려면 출연연보다 대학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이 단장은 "활용에 방점을 두고 연구하다 보면 남들보다 특허를 더 많이 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논문도 쓸 수 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후배 연구자들에게 논문보다 특허를 더 많이 내고 논문은 연구하고 남는 시간에 쓰라고 얘기하곤 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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