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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人문화] "연말보너스 봉투째 주고 모았죠"…평생수집 미술품·유물 `문화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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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영인'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자 유상옥 회장
우리것 잊히는게 안타까워 복합문화공간 2003년 '스페이스씨' 건립
50년간 모은 수천점 전시… 같은건물에 국내 첫 화장박물관 운영도
첫 수집품 소정 변관식 산수화… 꾸준한 기증·집필로 삶 기록
[산업人문화] "연말보너스 봉투째 주고 모았죠"…평생수집 미술품·유물 `문화나눔`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이 스페이스씨 20주년 기념전으로 진행 중인 신미경 작가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을 소개하고 있다. 이슬기기자 9904sul@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잘 전달돼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자이자 문화경영자인 송파(松坡) 유상옥(90·사진)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과 문화재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2003년 설립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씨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지하 1~2층 코리아나미술관은 화장품 회사의 특성을 살려 신체, 여성, 아름다움을 주제로 동시대 미술을 선보이는 전시를 해왔다. 5~6층에는 한국 화장문화의 역사와 유물을 다루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이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씨에서 만난 유 회장은 "이곳을 계획할 당시 우리의 것이 너무 쉽게 잊힌다는 게 안타까워 고민이 많았다"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 전통 문화의 중요성이 많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 우리 문화·전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설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50년간 미술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다 보니 수천 점의 미술품들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를 혼자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과 유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이에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화장박물관이다. 'K-뷰티'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근원이 되는 한국의 화장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섰다. 유 회장은 "많은 기업들이 문화경영과 문화를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기업에서 20년간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문화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과의 차별점에 대해 그는 "전문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등록해 한 건물에서 함께 운영하며 밀도 있는 연구를 토대로 전시를 기획하고, 해외에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전시와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소장품 순회전을 개최하는 등 지난 20년간 꾸준한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유 회장은 1959년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해 1977년부터 10년 동안 동아제약의 자회사였던 라미화장품의 사장을 지낸 뒤 1988년 11월 15일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했다. 동아제약에 재직하던 70년대 초반부터 그는 미술품과 유물 수집을 삶의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고서화 같은 작품들을 보며 감성을 키우라는 지인의 권유로 그림 보기에 빠져들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동 화랑가에 들러 그림을 봤죠. 제약회사 월급쟁이로 일하면서 연말 보너스를 봉투째 내주고 그림을 수집하는 등 열성적으로 작품들과 유물들을 수집했습니다."

[산업人문화] "연말보너스 봉투째 주고 모았죠"…평생수집 미술품·유물 `문화나눔`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이 스페이스씨 5층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 전시된 '고스트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슬기기자 9904sul@

유 회장의 첫 수집품은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다. 그는 "이 작품을 보면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던 향수와 함께 뒷동산에서 꽃을 꺾어 놀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며 "인사동을 드나들던 시절 어렵게 구입한 첫 작품이어서 더욱 정이 간다"고 전했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하며 모은 미인도도 애정이 가는 수집품으로 꼽았다. 유 회장은 소장품으로 기획한 '자인' 전시를 통해 다양한 '동서양의 미인도'를 국내 여러 지역에 선보이며 문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문화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사실 경제적으로 관리비 ·운영비·인건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며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 공간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세계적인 기업들을 시찰 가보면 공장이나 사무실에 근사한 박물관을 둬 볼거리를 선사하더군요. 독일의 웰라나 미국의 엘리자베스 아덴, 일본의 폴라·산토리·시세이도 등도 멋진 화장박물관이나 자료관을 갖췄거든요. 스페이스씨 설립을 통해 국민의 문화수준 향상에 이바지함은 물론 사원들에게도 큰 자부심을 주고, 대외적으로는 고객과 거래처에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유 회장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는 기업 목적을 실현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운영해 우리의 문화를 보전하고 있다"며 "저희 회사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고객들의 성원으로 20년간 무탈하게 최고경영자(CEO) 겸 컬렉터로서 이곳을 운영하지 않았나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유 회장은 유물과 미술품 기증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09년 개인 소장 유물 2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비롯해 모교인 덕수고 100주년 기념관, 청양군 백제역사문화체험박물관 및 농업박물관, 코리아나법인 등에 5400여 점을 기증했다. 박물관·미술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옥관문화훈장에 이어 지난해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화장하는 CEO' '문화를 경영한다' 등 다양한 저서를 집필한 그는 수필가로서의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열한 번째 저서 '양재천을 거닐며 아흔의 경영인'을 출간했다. 글쓰기를 놓지 않는 이유를 묻자 유 회장은 "일생을 살며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됐는지, 도움이 됐다면 얼마나 됐는가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면서 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젊을 때부터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라고 조언해요. 훗날 그 기록을 가지고 책을 쓰면 내가 평생에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내 일생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소회를 밝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이스씨는 현재 20주년 기념전으로 신미경 작가의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을 진행하고 있다. 유 회장은 "하반기 전시로 그간 주목해 온 주제 '신체'를 재탐색하며, 동시대 '몸'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는 국제기획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또 "화장박물관에서는 상설전을 새롭게 개편해 7월 오픈하고, 현대 길상(吉祥)의 의미를 살펴보는 테마전을 하반기에 선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미적인 감각들을 토대로 스페이스씨가 현대 미술을 통해 세계 속에서 문화 자긍심을 높이는 공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저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며 우리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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