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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학 칼럼] LG 주식은 구광모 회장 개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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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정구학 칼럼] LG 주식은 구광모 회장 개인 것이 아니다
딱 20년전인 2003년 여름. 필자는 LG그룹의 경영권을 내려놓고, 초야에 묻혀사는 구자경 LG 명예회장(1925∼2019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8년전 회장직을 맏아들인 구본무 회장(1945∼2018년)한테 물려준 뒤, 자신이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 세운 연암축산원예대학(현 연암대학교)에서 버섯농사를 짓고 있었다.

대학내 그의 거처엔 1960∼70년대 만든 금성(골드스타) 라디오와 최초 칼라TV, 주식시세를 보는 낡은 컴퓨터가 있었다. '뒷방 명예회장님'으로 물러났다고 해도, 재벌가의 소박한 집기는 그의 검소한 면모를 보여줬다.

필자는 개인 일상을 듣다가 궁금한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안타깝게도 장손이 사고로 사망했는데, 구본무 회장 다음엔 누가 LG의 후계를 잇나요?"

당시 구본무 회장의 후계구도를 두고, 두산이나 금호그룹처럼 형제들이 돌아가며 '사우디 왕가'식 총수 혈통을 잇는 것 아니냐는 억측이 나올 때였다. 구 명예회장은 예상 밖의 답을 했다. "우리 집안은 유교를 중요시해요.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시고 어른을 잘 공경하라고 손주들한테 강조하죠. 그래서 말인데 제사를 모실 장손으로 본무 동생인 둘째 본능의 외아들을 장손으로 본무 호적에 올리려고 해요."

필자는 깜짝 놀라서 "제사만 지내게 하나요? 아니면 LG그룹의 차기 회장 자리도 물려주나요? "라고 물었다. 구 명예회장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도 그랬고, 본무도 그랬듯이 지분을 승계받아 당연히 그룹을 맡는 거지."

구광모 후계자의 성장과정과 성격도 설명했다. 한자 이름(具光謨)을 필자의 취재수첩에 적어주기까지 했다. 그때 손자 구광모는 뉴욕에서 컴퓨터공학을 배우는 25살의 공대생이었다. MBA 공부도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업자와의 분리 계획도 밝혔다. "전자, 화학, 금융은 구씨쪽이고 정유, 건설은 허씨쪽이지."

이런 인터뷰의 비화(秘話)는 나중에 현실화됐다. 구본무 회장의 2018년 급작스런 암 투병후 작고로, 구광모 회장은 40세에 LG그룹 총수를 맡았다. 허씨 가문과의 GS그룹 분리, 구자경 회장 3남인 구본준의 LX그룹 분리도 착착 진행됐다. LG그룹의 분가 전에 주요 임원들은 구씨와 허씨의 가계도를 그려놓고, K 1∼10과 H1∼10 등의 서열까지 만들어 외울 정도로 패밀리 구조가 복잡했었다. 역시 '인화(人和)의 LG'라는 평가를 받았다. '형제간 회장 대물림'을 해오던 두산에선 고 박용오 회장의 반기와 분쟁이, 금호아시아나에선 박삼구,박찬구 형제 회장간의 다툼이 시끄러웠기 때문.

장자승계를 지켜온 LG가 상속 분쟁에 처음 휘말렸다. 고 구본무 회장의 미망인 김영식 여사(71)와 두 딸이 구광모 회장(45)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 5년전 구본무 회장의 별세 후 이뤄진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는 주장이다. 법적 쟁점은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 존재유무와 제척기간(법률권리 소멸기간, 3년)이다. 재계에선 "가족간 몇차례 협의해 법적으로 끝난 사안을 문제 삼는데는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다.

유교 가풍을 강조해온 LG에서 불거진 상속권 분쟁은 그룹 경영의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필자가 만난 다른 대기업 오너와의 대화 한토막. "재산이 1조원을 넘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런 짓궂은 질문에 이 오너는 "할아버지께서 창업한 덕분에 제가 오너가 됐지, 제가 잘나서 됐나요? 선친을 거쳐 물려받은 주식재산은 제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넘겨줄 상속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무덤에서 할아버지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회사를 키울 지 밤잠이 안와요."

취임 5년차를 맞은 구광모 회장. 애플과의 전기차 동맹 같은 신사업을 구현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집안 어른의 뜻에 따라 회장직을 물려받았더라도 상속분쟁에 힘을 빼서는 안된다.

LG에선 구인회 창업 회장의 (1907∼1969) 6남4녀, 2대 구자경 회장의 4남2녀중에서 장자에게 경영권이 승계됐다. 구광모 회장의 주식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후손에게 물려줄 경영권 재산이다. 구본무 회장이 가졌던 주식도 거쳐가는 '정거장 LG 주식'일 뿐이다.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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