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 세종 시대의 김을신·최윤복, 현대의 곽상도](http://contents.dt.co.kr/images/202302/2023021802109958038001[1].jpg "[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 세종 시대의 김을신·최윤복, 현대의 곽상도")
의금부는 '대명률'에 맞춰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김을신이 뇌물로 쓴 장물(贓物)은 189관(貫)으로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참형, 최윤복은 13관(貫)으로 곤장 80대에 도형(徒刑-징역) 2년이었다. 또 최윤복의 경우 얼굴이나 팔뚝에 흠을 내 죄명을 먹칠하여 넣는 자자(刺字)형까지 받아야 했다.
세종은 예상 밖의 판결을 했다. 김을신과 최윤복 모두 관직만 박탈하고 경상도로 유배를 보내는 데 그쳤다. 뇌물로 쓴 물건은 한성부에 추징케 했다. 김을신은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 최윤복의 아버지는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 원종공신 최운해라는 이유였다.
감찰기관인 사헌부에서는 세종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헌부는 한달 뒤 세종에게 "의주목사 김을신·판관 최윤복 등을 비옵건대, 다같이 율에 비춰 치죄하소서"라는 계를 올렸다. 당시 법으로 통용되는 대명률에 따라 처벌할 것을 다시 건의한 셈이다. 그러나 세종은 "죄를 논하지 말라"며 거절했다.
세종은 2년 뒤 김을신과 최윤복의 유배형을 풀어주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해 11월에는 두 사람에게 직첩을 줘 복권시키기까지 했다. 더구나 최윤복은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다. 이유는 2년 전과 똑같았다. 김을신은 원종공신, 최윤복은 공신의 아들이라는 이유다.
전체 과정을 보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들에 최고의 성군이자 명군으로 기억되는 세종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시대에도 임금 입장에서 필요한 권신인 경우 뇌물죄를 지어도 형량을 경감시켜주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대간의 탄핵을 수없이 받아 관직을 박탈당했다가도 조기에 복직했다. 명재상의 대명사인 황희, 청백리의 상징으로 통하던 맹사성이 대표적이다. 반면 권신이 아닌 경우에는 뇌물죄를 지으면 그 양에 따라 볼기를 치는 태형·장형이 행해졌고, 최고수위인 참형까지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8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아들 퇴직금 50억원'에 대해 재판부로부터 뇌물죄 무죄선고를 받았다. 1990년생인 곽 전 의원 아들은 한 대학 디자인학과를 나와 대장동 개발업체에서 6년간 근무한 뒤, 대기업에서 수십년 일한 임원도 받기 힘든 거액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곽 전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내고 대장동 업자인 김만배씨와 친한 대학 동창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더구나 김 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을 통해 곽 의원 측에 돈을 건네겠다고 말하는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도 공개된 상태다. 봐주기 수사, 봐주기 판결 의혹은 당연히 따라온다.
조선시대처럼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리 적용과 양형의 편차가 크다는 불편한 진실도 확인된 셈이다. 2011년 '운송수입금 800원으로 자판기 커피 2잔을 사먹은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선고한 판결과도 대비된다.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편, 검찰은 지난 13일 곽 전 의원의 판결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항소장을 제출했고, 곽 전 의원 아들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를 통해 비상식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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