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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법무장관이 대통령 수사를 지시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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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자문위원·전 언론인
[포럼] 법무장관이 대통령 수사를 지시하는 나라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특별검사(Special Counsel)의 수사를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부통령 시절 기밀 문건 다수를 자신의 사저와 개인 사무실에 뒀던 사실이 밝혀졌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12일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계인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주(州) 연방검찰청 검사장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직전 대통령이자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역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의사당 난입사태(2021년 1월 6일)와 기밀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된 의혹 때문이다. 갈런드 장관은 지난해 11월 18일 연방 검사 출신의 잭 스미스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2016년 대선에서의 러시아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수사 방해 혐의로 로버트 뮬러(전 FBI국장) 특검의 조사도 받았다.

미국에서는 검찰을 지휘하는 위치의 권력자와 관련된 의혹을 공정하게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관행이 정착되어 왔다. 그러나 의회가 우리처럼 특별검사법을 별도로 제정, 특검을 임명하지 않는다. 한 때 한시적으로 공직자 윤리법(Ethics in Government Act)이란 성문법(1978년~1999년)에 의한 특별검사제도가 있었으나 부작용으로 폐기됐다. 현재는 법무장관이 법무부 내부규정에 따라 특별 검사를 임명한다. 물론 공정한 수사를 위해 연방검찰청이나 법무부 소속이 아닌 외부에서 특검이 임명된다. 미 의회가 특검 임명을 요청할 수 있지만 법무장관에게는 참고사항일 뿐,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다. 공화당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특별검사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게 대표적이다. 결국 특별검사 임명 여부는 여론이 관련 의혹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이상이 간단히 살펴본 미국의 특검 제도다. 우리도 박근혜 정부 때 제정된 상설 특검법에 따라 국회의결 없이 법무장관의 결정만으로도 특검을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전례가 없다. 지금까지 특검은 국회의 특별법 제정에 따라 15명이, 상설특검법에 따른 국회의결로 1명이 각각 임명됐을 뿐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담당할 특검을 그 정부의 법무장관이 임명할 경우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또 임명권자를 수사할 특검 임명이라는 결단을 내릴 올곧은 법무장관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바이든의 기밀문서 유출사건을 담당하는 허 특검은 현 법무부 장관에 의해 임명됐다. 더구나 그는 트럼프가 임명했던 연방 검사장 출신 변호사로 보수성향의 인사다.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공세를 막으려는 고도의 정치적 선제조치일 수도 있으나 보수성향의 허 특검 임명으로 공정성 시비는 불거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의혹과 트럼프의 관련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뮬러 특검도 트럼프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트럼프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전격 임명됐다. 뮬러 특검은 22개월 동안의 수사 끝에 트럼프 측근 등 다수를 구속 또는 기소했으나 트럼프의 권력남용, 사법방해 혐의는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죄라고 할 수도 없다'는 보고서를 내 민주당이 트럼프를 하원에서 탄핵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말이다.

워터게이트 수사를 위해 임명된 콕스 특검도 닉슨 정부의 법무장관이 임명한 인사다. 그가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치자 닉슨은 그를 해임하도록 법무장관에 지시했다. 그러나 법무장관과 부장관은 모두 닉슨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임한다. 결국 법무부 서열 3위가 닉슨 지시대로 콕스 특검을 해임한다. 언론은 하루에 3명이 해임된 이 사건을 토요일(1973년 10월 20일)의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이는 여론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닉슨이 임명한 판사가 과반이 넘는 대법원 마저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에게 등을 돌렸다. 닉슨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그동안 내놓지 않던 도청테이프를 제출해야 했다. 도청테이프는 그의 사건 은폐 시도를 만천하에 보여줬다. 그 결과 닉슨은 하원의 탄핵을 받고 상원 표결 직전, 사임한다. 특검, 법무 장관, 부장관, 대법원 모두가 법과 원칙에 충실히 따른 결과다.

워싱턴 포스트의 집요한 추적 보도도 이 과정에 큰 몫을 했다. 미국 대통령은 언제든 법무장관을 갈아 치울 수 있다. 그런 법무장관이 임명하는 특검이지만 미의회는 이를 불신, 직접 특검을 임명하는 절차는 밟지 않는다. 검찰총장도 겸하고, 연방수사국(FBI)도 산하에 둔 막강한 법무장관이지만 직권을 남용하지 않고 법을 지키는데 앞장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 판사 역시 보수나 진보 성향을 떠나 사안별로 법과 양심에 따라 국익을 위해 판결한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다. 보수 우위의 미 대법원이 2021년 6월 17일 오바마케어(전국민의료보험)를 폐지하기 위해 공화당 주지사들이 제기한 위헌소송에서 오바마케어 유지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법원이나 법무장관, 건전한 언론이 그 동안 보여준 행적에 의해 형성된 신뢰가 미국을 지탱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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