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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첨단산업 中 불공정, 당하기만 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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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첨단산업 中 불공정, 당하기만 할텐가
"중국은 아직 저가 리튬인산철(LFP)과 원통형이 중심이고, 아직 우리와는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지나친 우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중국은 아직 저가 LCD(액정표시장치) 디스플레이 위주이고 프리미엄급 시장에서는 아직 한국과 기술격차가 있습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까지 가려면 한참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앞은 최근 국내 유력 배터리 업체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고, 뒤는 6년 전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새삼 되새겨보다 보니 '프랙탈 이론'이라는 단어가 눈에 보였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뜻한다. 역사도, 글로벌 경제도 불확실성의 연속인듯 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유력지에서 최근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공격적인 증설 투자를 단행해 3년 뒤 수요의 3배에 이르는 공급과잉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의 주력이 한국의 리튬이온과 다른 리튬인산철 배터리이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이 5~6년 전 한국보다 더 큰 11세대 LCD 생산라인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국내 업체로부터 들은 말이 새삼 떠올랐다. 당시 중국의 투자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수율이 제대로 나올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LCD는 큰 유리기판을 만들어 이를 얼마나 잘 절단해 버리는 유리기판을 최소화 하는 것이 수익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TV 시장의 변화와 기술 등을 잘 고려해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선택의 시점이 중요한데, 과연 후발주자인 중국이 이 같은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느냐고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지금까지는 중국이 옳았고 우리가 틀렸다. 금액 기준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역전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2016년 17.6%대 45.8%였던 중국과 한국의 점유율은 2021년이 되자 41.5%대 33.2%로 역전됐다.

그 사이 한국은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TV까지 OLED로 디스플레이의 기술 주도권을 옮기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중국이 발빠르게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6년 연속 TV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가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을 받아서 TV를 제작하는, 6~7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숨겨진 반칙이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등의 국가 차원의 산업육성 계획을 세우고, 지방정부가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급속도로 키웠다. 여기에 14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의 엄청난 내수시장까지 더해지니 한국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은 여기에 또 삼성과 LG디스플레이 기술인재를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들여 영입하면서 공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 하기도 했다.
전기차용 배터리도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하다. 같은 점은 배터리 산업에서도 디스플레이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지원과 보조금 정책, 그리고 엄청난 내수시장을 앞세워 후발주자임에도 금세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인력 유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배터리 인재들을 수억원에 이르는 거액 연봉으로 유인해 업무 과정을 모두 CCTV로 감시하고, 몇개월 뒤에 복잡한 계약서 상의 문제점을 들며 소위 '토사구팽'을 했다는 소문이 2015년 이후부터 공공연하게 들려왔다. 그 결과 중국은 소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거의 한국과 비슷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CATL 등 중국 대표 배터리 업체들은 대놓고 수년 내에 한국보다 주행거리가 긴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세계 시장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은 가격 경쟁력이다. 디스플레이에서 그랬듯 중저가 시장을 장악하면 프리미엄급으로 넘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오죽하면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중국에 첨단산업 주도권을 수년 내 뺏길 수 있다는 미국의 절박함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7월 정부가 내놓은 K-배터리 육성 계획에는 40조원의 민간 투자 계획만 나왔을 뿐 정부 차원의 투자나 지원은 선언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면 역사가 또 반복될 것 같아 걱정된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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