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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반도체·배터리, 잘 나갈 때가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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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반도체·배터리, 잘 나갈 때가 고비다
지난 10월 15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11개 품목이 내리막을 탔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석유제품, 배터리만이 그나마 전년 동기보다 수출이 늘었다. 이 가운데 자동차·부품은 지난해까지 이어진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 등 공급망 마비의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이고, 석유제품 역시 기저효과에 국제유가 고공행진의 영향이 크다.

배터리만이 계속 우상향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올 들어 전년 동월과 비교해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없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36.7%씩 성장해 2025년에는 1600억달러(약 191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배터리가 조만간 우리나라의 단일 최대 수출품목인 메모리반도체 못잖은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예측한 2025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2205억 달러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8%였다. 이 비중은 2030년 약 30%, 2040년 약 54%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품목이 반도체에서 배터리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것은 배터리 역시 메모리반도체와 마찬가지로 후발주자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계 총수의 결단으로 뚝심있게 투자를 했고,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면서 이 같은 위상을 획득했다는 점 역시 마치 평행이론을 보듯 비슷하다.

현재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CATL을 제외하면 세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고(故) 구본무 회장이 1992년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서 2차전지를 처음 접하고 직접 샘플을 가져오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보다 10년 먼저 시장을 선점한 파나소닉과 당시 닛산·NEC 합작사인 AESC 등을 앞세운 일본의 아성을 꺾기란 쉽지 않았다. 수년간의 투자에도 성과가 나오지 않자 LG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2005년 당시 2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때에도 구 회장은 "끈기있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SK도 마찬가지였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80년대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시절 "언젠가 기름을 팔지 못하는 시대가 오면 축전지라도 팔아야 한다"며 사업 목적에 배터리를 명기했고, 이는 현재 K-배터리 3강 중 한 축인 SK온이라는 회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강국이 됐던 스토리와 유사하다. 막 주목받기 시작한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 등의 독무대였고, 대규모 투자와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병철 창업주가 1983년 2월 이른바 '도쿄 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삼성전자는 그 해 11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전했다. 이후 불황에도 멈추지 않았던 뚝심있는 투자는 결국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40%를 장악한 삼성전자의 현재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린 반도체와 배터리는 지금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매번 '세계 최초'의 신화를 이어갔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은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의 경우 미세공정의 한계에 임박한 가운데 과거 2년 여까지 차이가 났던 마이크론과의 기술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배터리 역시 강력한 자국 시장과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중국 CATL이 유럽과 아시아 전기차 시장을 넘보고 있다. IT용 범용 소형 배터리에서는 한국과 중국 제품 간의 성능 차이가 거의 없다.

현재에 안주하면 한국도 과거 일본처럼 주저앉을 것이라는 경고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꿀 혁신 신기술을 보여주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을 따돌릴 방법이 없다. 선대 회장의 업적을 이어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깨가 무겁겠지만, 이를 극복해야 앞으로 100년을 더 버틸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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